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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마르타를 위한 변명

유인창 안사노 신부(중화동본당)

“마리아요?! 어휴, 변기를 그렇게 해놓고…. 저는 마르타

편이에요!” 신약시대에 좌변기가 있을 리도 만무했지만 심

하게 감정이입이 된 나눔에 저절로 집중이 되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어떤 교우가 누군가 일을 본 직후,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변기가 막혀 넘칠 지경이 되어 있더

랍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 아니어서 그냥

두려했지만, 수녀님이나 사무장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이 떠

올라 힘들게 사태를 수습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듯함

보다는 부아가 스멀스멀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변

기를 막히게 한 그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면 뭐 하느냐고요? 화장

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면 누구한테 얘기해서 뒤처리를

하던가, 아니면 자기가 직접 치웠어야지요! 저는요, 기도만

하고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 별로예요. 마르타가… 딱해요.”

시중드는 마르타가 나의 기도 모델

저 역시 마르타과

(科)

인지라 이분의 나눔에 크게 공감했습

니다. 마르타가 등장하는 다른 장면

(요한 12,2)

에서도 그녀는

‘시중’을 드느라 아주 바쁩니다. ‘마르타 = 봉사의 아이콘’

입니다. 요즘처럼 봉사자 구하기가 힘든 세상에서 마르타

처럼 공동체에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마르타가 예수님께 넋두리랄까 신세한탄을 하는 모

습을 보면서 제 기도의 모델로 삼기도 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거나 부당한 대우를 겪었을 때 십자가 앞에 달려가서 주

님께 저의 마음을 그냥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솟구

쳤던 감정도 잠잠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마르타를 나무라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

니다. 당신을 위해 애쓰고 있는 걸 빤히 아는 분께서 마르

타를 차갑게 대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마르타

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다정하게 짚고는’ 넘어가셨을 것

같습니다.

“네가 애를 쓰고 있는 걸 내가 안단다. 그렇다고 마리아가

잘못한 것은 아니잖니. 내게 오기 전에 마리아에게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해보지 그랬어. 그리고 너도 내 곁으로 와서

좀 쉬렴. 내가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

너도 내 곁으로 와서 좀 쉬렴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불가능합니다. 부탁은

하되 험담은 삼가야 합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하소연했

다고, ‘신부님은 예수님의 대리자이니까 가서 다 일러 바쳐

야지’ 해서도 안 됩니다. 신부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한

쪽 얘기만 듣고 잘못 판단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동체를 무너뜨릴 윤리적·법적 문제는 침묵하지

말고 교구청를 통해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됩

니다.

글을 마치면서, 성당에서 마르타처럼 봉사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합니다.

유인창신부의

신앙

입자

나, 너 그리고 우리

변종찬 마태오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더불어 사는 인간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달리 말한다면 인

간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우정 안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이렇게 말씀하

셨습니다.

“이 세상의 재화들 중 일부는 없어도 되는 것이지만,

…건강과 우정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강론』 299D,1)

이토록 우리 인간은 이 세상의 외로운 방랑객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다른 인간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운명인 것입

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벗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우호

적이지 않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서한』 130,2,4)

특별히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뿐 아니라 눈물

을 흘리는 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으면 세상의 온갖 어려운 시련들도 감소됩니다. 이를 아

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사슴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사슴이 목초지를 찾아 어떤 섬까지 물길을 헤엄쳐

건너갈 때, 자신들의 뿔의 무게가 다른 사슴에 의해 지탱

될 수 있게끔 줄을 지어 이동한다. 뒤에 있는 사슴은 자신

의 목을 뻗어 앞에 있는 사슴에게 자신의 머리를 둔다. 무

리의 맨 앞에 있는 사슴은 자신의 머리를 지탱해줄 수 있

는 사슴이 없기 때문에, 지치면 그 자리를 뒤에 있는 사슴

에게 양보하고 그 줄의 맨 뒤로 물러선다. 이렇게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통해 사슴들은 섬까지 물길을 건너

갈 수 있다. 친구의 짐을 짊어주는 것이 우정에 대한 최고

의 증명이라는 진실의 실제적인 예이다.”

(성 아우구스티누

스, 『여든 세 가지 다양한 질문』 71,1)

이 세상 삶에서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그들

과 평화롭게 있으려 노력하지만, 실제 우리 삶 안에서는

충돌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체험합니다.

사실 충돌은 가톨릭 성인들 사이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가장 정열적인 연인들 사이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도 다툼과 충돌이 생깁니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

을 발견합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그토록 큰 신비라는 사실입니다. 물

론 이 세상에서 완전한 평화를 기대할 수 없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우리의 벗들이 선사하는 작은 도움으로 순간

의 평화를 맛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이 살고 계시는 땅까지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결코 배고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완전한 평화의 땅

으로 말입니다.

변종찬신부의

교부들

말씀사탕

“헌금 잔돈이 필요한 너,

창피해도 괜찮아!”

괜찮아 신부(가톨릭서울)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 애매한 궁

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본당 신부님, 수녀님께 여쭙자니

너무 사소하고, 부모님께 여쭙자니 많은 실망만 안겨드

릴 것 같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려니 그들도 모를 것

같은 그런 신앙고민들 … 여러분, “창피해도 괜찮아요!”

애매한 신앙고민들을 통해 신앙의 즐거움을 만나보세요.

Q.

안녕하세요. 저는 착한남편 나걱정 루카입니다. 저는

내집 마련을 목표로 올해부터는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제 용돈은 일주일에 2만 원

이에요. 처음엔 호방하게 결정했는데 점차 후회가 밀려오

고 있습니다.

예상 밖에도 문제는 미사 중 예물봉헌 때 터졌습니다. 봉

헌하는 줄에 당당히 선 채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매일 줄

기차게 입고 다니는 외투이건만 주머니에서 좀체 돈이 잡

히지 않는 겁니다. 나름 십일조로 2천 원씩을 남겨놓거든

요. 그런데 그날따라! 제가 봉헌할 돈은 오늘 아침 아내에

게 미리 받아둔 일주일치 용돈, 내 호주머니 전 재산인 만

원짜리 두 장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어느덧 봉헌함은 제 코앞까지 왔습니다. 용돈 전부를 낼

용기는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짧은 순간 별 생

각이 다 떠오르더군요. 그 때 봉헌함 안의 수많은 천 원짜

리 ‘잔돈들’이 보였습니다. 괜찮아 신부님, 혹시 헌금을 거

슬러가도 괜찮을까요? 마음의 준비도 없이 호주머니 절반

을 봉헌하기엔 제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38세, 나

걱정 루카)

A.

안녕하세요? 괜찮아 신부입니다.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그리고 미사 중에 분심이 많이 들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는 형제님이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결국 봉헌함에서 잔돈을 바꾸어 가셨나요?

액수보다 정성

우리가 보통 주일헌금이라고 하는 헌금은 옛날 초기교회

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사도 4,34)

당시에는 신자들이 미

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를 비롯해 올리브기름, 과일, 초

등 교회의 박애활동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것을 봉헌했습

니다. 이 때 돈도 함께 봉헌하면서 금전을 봉헌하는 ‘헌금’

이 전례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빵과 포도주

를 봉헌하는 대신 헌금이 많아지자 마침내는 돈을 헌납하

는 것으로 굳어져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거지요.

사실 헌금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이고, 헌금하는 사

람의 자기 희생을 뜻합니다. 쓰고 남은 것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좀 미안하잖아요.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도 마찬

가지죠. 희생제물의 성격을 갖는 헌금을 이해하는 것이 필

요합니다.

봉헌금에 대한 올바른 이해, 중요한 것은 마음

이 뜻을 잘 보여주는 어린이 성가도 있습니다. 지금은 가

사가 좀 바뀌었던데, 봉헌 때면 아이들이 목 놓아 부르던

노래였죠. “먹고싶어 죽겠는 걸 사먹지 않고, 이날을 기다

리며 모아왔어요”♪♬ 특히 ‘죽겠는 걸’ 부분에서 아이들

은 정말 눈을 질끈 감고 외치더군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관계입니

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당연히 그에 대한 준

비도 같이 하잖습니까. 중요한 사람을 만나면 옷도 그에

맞춰 입고 나가고, 그와 함께 쓸 돈도 주머니에 넣어두고

말이지요. 그러면 하느님께 희생제물과 감사의 표시로 봉

헌하는 헌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별히 설명 드리지 않

아도 잘 아시겠지요? 미사 중 봉헌하는 헌금은 바로 여러

분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괜찮아신부의

신앙

살자

신앙

의식주

변종찬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로 1993년에 사제품을

받고, 월곡동본당, 신내동본당에서 사목한 뒤 가톨릭대 신학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괜찮아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신자들이 주님의 자

비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이루어가길 바라는 마음

에서 익명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유인창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1994년에 사제품을

받고, 역촌동본당 보좌, 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지도신부로서 오랜 시간 청년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현재 중화동본당 주임신부로 사목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