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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아주 특별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전반부 3박 4
일은 가족여행을 했고, 후반부 2박 3일은 수도원에서 개인
피정을 했습니다. 아내 헬레나와 휴가 계획을 짜다가 큰아
들에게 여행 대장을 맡겨보았습니다. 큰아들은 가족회의
를 열어 의견을 모은 뒤 경주, 경산, 대구를 다녀오는 멋진
여행 계획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스물아홉이니 그럴
만한나이입니다. 맡기길잘했습니다.
한결, 도운, 새온, 채운 네 아이와 엄마 아빠까지 여섯
명 한 가족이 토요일 오전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경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수학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요즘 수학이
궁금해진 아빠가 묻는 질문에 컴퓨터와 물리학을 전공한
아이들이 ‘수학은 과학의 언어’, ‘수학은 사람들의 소통을
돕는도구’라며조리있게답을했습니다. 아빠와아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헬레나는 ‘아이들이 참 잘 컸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유적들과 맛집 탐방도 하고,
경주역 앞 성동성당에서 주일 저녁 미사도 드리고, 박물관
과 전시관까지 알찬 경주 여행을 마친 뒤 헬레나의 고향인
대구와 경산의 선산까지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외가 선산은 첫 방문이었습니다. 땡볕 아래 땀
흘리며 산소까지 오르느라 고생했지만, 엄마 집안 어르신
들의삶과역사를접하며많은생각을했을것입니다.
여행 일정 짜기와 숙소 예약에 맛집 찾기까지 아이들이
도맡아 하니 참 편안했습니다. 부모가 꼭 하지 않아도 되
는 일은 이렇게 자식에게 믿고 맡긴 뒤 뒷전에 머물러도
됩니다. 렛잇비
(Let it be)
가역시정답입니다!
서울 오는 차 안에서 남은 휴가에 개인 피정을 하고 싶다
했더니 헬레나는 바로 검색한 뒤 예약을 해줬습니다. 그 덕
에인천계양산아래가르멜수도원에서특별한시간을보낼
수있었습니다. 성당에홀로앉아기도드리고, 책도읽고, 산
책도 하고, 가만히 누워 쉬기도 하면서 사흘을 보냈습니다.
요즘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당신 음성
을 들려주세요. 제게 바라시는 바를 말씀해 주세요. 그대
로 따르겠습니다.” 피정을 하면서 다시 청했더니 주님께
선 “성녀 데레사와 대화해보렴.” 하고 답해주십니다. 16
세기 종교개혁 격동기에 가톨릭교회 개혁을 위해 맨발 가
르멜 수도회를 비롯해 17개 수도회를 창립했던 성녀 데레
사를 오래전 스페인 아빌라 여행 때 처음 만났는데, 가르
멜 수도원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 게 우연이 아니었나 봅니
다. 주님 말씀대로 그분을 더 공부하고 기도 속에 만나 깊
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수도회가 출간한 좋
은 책들이 눈에 띄어 구입해 읽고, 성녀에 관한 강의 영상
들도찾아들었습니다.
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데레사 성녀의 이 말씀이
마음을 울립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않고 나를 지켜보고 계신 그분을
만나고 싶다면 그저 하느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여행 준
비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대신 하느님께 한 걸음 다가갔던
아주특별한휴가였습니다.
말씀
의
이삭
아주특별한휴가
정석
예로니모
| 서울시립대학교교수
나를이끄는
성경구절
유임봉
스테파노
| 성산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