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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의
삶
몰라도존재하는세상
성녀바울라
글_
서희정
마리아
|
그림_
홍미현
세레나
(축일: 1월26일)
엄마가 변했다. 변해도 단단히 변했다.
처음엔 하나둘, 옷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전
부터는 보석을 팔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엄마가 가장 아끼
던 목걸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엄마는 특별한 사교 모임엔
꼭 그 목걸이를 했다. 그런 엄마를 모두 여왕처럼 대했다.
사실 엄마는 어디 가나 여왕이었다. 꼭 엄마가 귀족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집 노예들은 물론이고 아빠도,
친척들도, 이웃들도 누구 하나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
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특별한 미소를 갖고 있
었다. 뭐랄까, 투명하고 맑은 미소였다. 더러움과 어둠이
한 점도 섞이지 않은 미소랄까. 하긴, 엄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런 엄마가 눈물을 알게 된 건,
몇 년 전,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아빠의 죽음은 엄마의 미소를 앗아갔다. 슬픔은 엄마를 깊
이깊이 물들였다. 여기저기서 재혼 신청이 왔지만, 엄마
에게 아빠를 대신할 사람은 없었다. 슬픔이 엄마를 변화시
킨 걸까? 이런! 엄마가 집마저 팔겠다고 한다. 이제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큰 딸인 내가 나서야겠다.
“엄마!” 엄마가 돌아봤다.
“오, 블레실라! 마침 잘 왔다.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
었거든. 얼마 전에 엄마가 빈민굴이란 곳을 알게 됐단다.
그래, 빈민굴. 너도 처음 들어 본 곳이지? 엄마도 그전까
지 그런 곳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단다. 그곳은 …… 비
참한 곳이야. 그곳의 사람들도, 그곳의 냄새도, 그곳의 상
황도 전부 비참, 비참했어.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가난
과 아픔을 전부 그 굴 안에 모아 둔 것만 같았단다. 처음
엔 너무 놀라서 도망 나오고 싶었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내가 도망간다고 해서, 내가 안 본다고 해서 없
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이야. 분명, 그곳은 내가 몰랐을 때
도 존재했던 세상이잖니. 그곳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
곳엔 늘 비참한 사람이 있었는데 난 왜 이제야 알게 된 걸
까? 내가 30년 동안 먹고 마시고 누리던 것들을 나누기만
했더라도 그곳에서 죽어 간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몰랐다고 하기엔 내가 너무 비겁하다는 생
각이 들더구나.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생각
한 순간, 내 슬픔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어.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고 즐거워졌다는 게 아니란다. 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행복으로 삼다니! 그건
하느님의 자녀다운 생각이 아니잖니? 단지 난 그들을 도
울 수 있다는 게 기뻤단다. 엄마는 결심했어. 너희 아빠가
남긴 재산도, 하느님이 주신 나의 시간도 빈민자들과 함께
나누기로 말이야. 분명, 천국에 간 너희 아빠도 기뻐하실
거야. 너도 기뻐해 주겠니?”
엄마가 미소를 띠었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소였다.
*덧: 훗날, 큰딸 블레실라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성녀
바울라의 자선 사업에 든든한 동료로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