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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크리스마스의 기적

유인창 안사노 신부(중화동본당)

1989년 7월에 군입대를 한 저는 12월 24일 아직 이등

병이었습니다. 신학생 신분임에도 강원도 철원 깊은

산속이라 성당도 가지 못하고 크리스마스를 지내야

했습니다. 고참병들은 크리스마스라고 술과 안주로

분위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군대에는 삼훈오계

(三訓五

戒,음주·도박 등 군인의 금기사항을 나열한 지침, 편집자

주)

라는 것이 있지만, 사단본부와도 멀리 떨어진 곳이

라 그런 일탈이 가능했습니다. 취기가 오른 고참들은

모포를 깔고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할머

니와 아버지로부터 정식으로 화투를 배운 나름 ‘고수’

였습니다. 청소와 다른 잡무로 왔다 갔다 하며, 최고참

이든패를보면서훈수를두었습니다.

“똥 드세요.”

“그거내시면쪽입니다.”

저의 훈수는 거의 신기

(神技)

에 가까웠고, 최고참은 저

를 그 판에 끼워줬습니다. 그리고 그게 불행의 시작이

었습니다. 고스톱판을 쥐락펴락하며 기쁘게

(?)

성탄

절을 보내고 있었는데, 고참 한 명이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문을 열고 나간 사이 부대대장이 들이닥쳤습니

다. 최전방에서, 그것도 연말연시 특별경계 조치가 내

려진 상황에서 음주와 도박에 빠져 있는 병사들을 본

부대대장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저와 고참병

들은 바로 포승줄에 묶여 본부대 행정반으로 끌려갔

고,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밤을 하얗게 지샜

습니다. 취기가 오른 고참병 몇몇은 꾸벅꾸벅 졸기도

했지만, 저는 정신이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다른 부대

감시를 위해 떠나는 부대대장이 다시 돌아와서 저희

를 모두 ‘영창’에 보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학생으

로 4년을 마치고 군입대해서, 제대 후 3년만 더 하면

사제가 되는데, 영창을 갔다 오면 범죄자가 되기 때문

에학교에서쫓겨날것이 분명했기때문입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오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던 아

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8시에 전방 시찰을 마친 부대

대장은 ‘도박과 음주’로 군기강을 흐트러뜨린 병사들

을 불러 영창으로 보낼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러고도

화가 가라앉지를 않았는지, 팬티만 남기고 홀딱 탈의

를 시킨 후 우물에 가서 몸에다 물을 끼얹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철원 기온이 영하 15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벗은 상태에서 물을 뒤집어썼는데도, 곧

다가올 비극적인 운명 때문에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

습니다. 팬티만 입은 채 맨발로 운동장을 뛰는데, 부모

님께 죄송한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기

도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일주일 동안 기합을 받게

해달라고. 영창은 안 가게 해달라고. 이번 한 번만 구

해주시면

(?)

다시는나쁜짓 하지 않겠다고.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한 시간을 그

렇게 뛰고 있었을까. 갑자기 본부대 김 병장이 나와서

는 막사로 돌아가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정말 영

창에 가나보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투복

으로 갈아입고 모두가 침통한 표정으로 침상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크리스마스 특식과 함께 선물꾸러미

를 한가득 안은 본부중대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연병장을 돌고 있는데, 마침 교회에 가서 성

탄 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대대장이 발가벗은 채로 기

합을 받고 있는 저희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는부대대장에게 이렇게말했답니다.

“봐줘라. 오늘 크리스마스잖아”라고요. 살면서 개신교

신자의 도움을 받아본것은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종교, 지역, 신분, 세대를 떠

나서 우리가 서로를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용서한다

면…’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글쓰기를 많이 망설였습니다. 부끄러운 과거니까요.

그러나 저는 죽었다 살아온 체험이었고, 그때 하느님

께 드린 그 약속을 지금까지 잘지키고 있습니다.

유인창신부의

신앙

입자

쪼들리는 지갑,

두려운 불우이웃돕기 행렬

창피해도 괜찮아!

괜찮아 신부(가톨릭서울)

연말연시 잘 맞이하고 계신지요?

이번 호에서는 사소한듯하지만, 많은 신자들께서

마음에 걸리는 고민이라고 호소하시는 내용을 들려

드릴까 합니다. 바로 ‘자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쪼들 크리스티나 자매님의 ‘창피해도 괜찮은’ 신

앙 상담을 함께 들여다보실까요?

“안녕하세요. 괜찮아 신부님. 조금 창피하지만 용기

를 내어 펜을 듭니다. 저는 나쪼들 크리스티나입니다.

추운 날씨만큼 지갑도 텅텅 비어갑니다. 그런데 요즘

은 또 연말이라 왜 이리 불우이웃돕기 행렬이 눈에

띄는지요. 예수님은 가장 가난한 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신다는데, 제가 예수님을 지나치는 것 같아 마

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지갑은 쪼들리고, 마음은 죄를

지은 것만 같아 한없이 무겁고… 죄의식까지 느끼는

제가 지나친 걸까요? 도와주세요, 괜찮아 신부님!”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 특히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

을 도와주는 것은 참 착한 마음이지요. 그리고 연말이

되면 구세군 냄비 등이 준비되어 불쌍한 이웃을 도와

주려는 이들도 더 많아집니다. 다른 이가 선행을 하면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고요.

좋은 본보기를 따르게 되는 좋은 모습이지요. 그런데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분수에 맞게 다

른 이를 도와주어야 해요. 제 중학교 친구 하나는 교회

를 열심히 다녔는데, 이 친구가 큰 사고를 친 적이 있

어요. 하루는 목사님의 설교에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

여 자기는 꼭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요. 그러더니 이 친구가 당장 집에 가서 아버지께서 이

사 비용으로 이불 아래 모아두신 전세금을 모두 가져

다 교회에 헌금한 게 아니겠어요. 나중에 집에서 알게

되어 아버지께서 교회로 가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에

돈을 되찾아왔답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전업주

부셨는데, 집안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

게 봉사를 한다면서 밖에서만 좋은 일을 하셨어요. 급

기야는 남편께서 속상한 마음에 저를 찾아온 적도 있

었지요. 과연 이런 봉사를 주님께서 반기실까요? 만약

여러분이 지갑에 돈이 부족하다면 시간이나 노력으로

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특히 다

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것도 정말 큰 도움입니

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다른

이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헌신한다면, 그만큼 큰 자선

은 또 없을 것입니다. 불우이웃을 위해 돈을 많이 주지

는못해도할수있는게참많지요?

괜찮아신부의

신앙

살자

신앙

의식주

강함이 약함을 짊어진 날

변종찬 마태오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성탄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이 되셨느냐

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셨다는 데 있습

니다. 당신의 사랑을 보다 고귀한 방식으로 드러내실

수도 있었지만, 그분께서 택하신 방식은 가난한 부부

의 아기로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처럼, 온 우주를 자신

의 현존으로 채우는 분이 베들레헴의 여인숙에서 방

을 하나도 찾지 못했고, 결국 그분은 동물들을 먹이기

위한구유에놓이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강론』 189,4)

하느님께서 집도 없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있는 어

린 아이로 인간 역사에 들어오기 원하셨던 것은, 우

리 구원에 필요한 덕인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

니다. 인간의 교만함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것을 만

드셨던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신 분이 종의 모습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필리 2,7-8 참조)

우리의 시간이 끝

날 때, 하느님 당신께서 우리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직접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 레오 대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당신께 직접 올 수 없는

우리의 수준으로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낮추셨으며,

인간의 눈으로는 견디어 낼 수 없는 당신 엄위의 광

채를 육체의 너울로 덮으셨습니다.

(…)

우리의 본성

을 취하심으로써 그분은 우리를 위한 계단이 되셨으

며, 우리는 이를 통해 그분께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제5 성탄 강론』 2-3)

그러므로 성탄은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

늘에서 굽어보리라”

(시편 85,12)

는 말씀이 이뤄진 날입

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 3,27 참조)

무한한 권능

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가난한 인간의 약함을 짊어지

신 오늘, 베들레헴의 여인숙에서 방을 구할 수 없었

던 그분께서 이제 믿는 이들의 마음 안에 자신을 위

한 성전을 만드시는 오늘을 기쁘게 선포합시다.

변종찬신부의

교부들

말씀사탕

변종찬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1993년에 사제품을

받고, 월곡동본당, 신내동본당에서 사목한 뒤 가톨릭대 신학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괜찮아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신자들이 주님의 자

비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이루어가길 바라는 마음

에서 익명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유인창 신부

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1994년에 사제품을

받고, 역촌동본당 보좌, 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사목국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지도신부로서 오랜 시간 청년들과 함께해

왔습니다. 현재 중화동본당 주임신부로 사목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