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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마음속의편견을버릴때

초록은 자연의 색입니다. 평화와 안전과 치유를 상징

합니다. 그러나 그 색과 이름으로 1936년부터 1966년까

지 미국에서 나온 흑인 운전자를 위한 안내서 ‘그린북

(Green

Book)

’은그것과는거리가멉니다. 배려도존중도아닙니다.

그린북은 이렇게 말합니다. 흑인이 여행을 하려면 평화

로운 휴가를 위해서 잠은 이곳에서만 자고, 밥은 이곳에서

만 먹어라. ‘이곳’은 사회가 쳐놓은 차별의

울타리인 유색인 전용 호텔과 식당들입니

다. ‘집처럼 편안하다’, ‘미식가를 위한 훌륭

한 식사’란 수식어가 달려 있지만, 과연 그

럴까요.

토니 발레룽가

(비고 모텐슨 분)

는 낡고 지저

분한 호텔을 보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로서는 당연합니다. 그는 백

인입니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으니 순진

하게 그린북을 믿은 거지요. 그러나 돈 셜

(마허샬라 알리 분)

는 “여기가 맞다”고 말합니

다. 천재 뮤지션

(피아니스트)

으로 백인들의 초청을 받지만 무

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도 “그냥 검둥이일 뿐”이기 때문

입니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그린북>은 1962년 미국 남부를 순회 연주하는 돈과

그의 운전사로 고용된 토니가 8주 동안 만나고, 보고, 겪

고, 부딪친차별과편견에관한이야기입니다. 주먹과거친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탈리아 출신의 가난한 백인과 천

재적재능과교양, 품위를가진여유있는흑인이란인물과

그관계설정부터가예사롭지않습니다.

이렇게 출발에서부터 낡은 고정관념을 깨버린 영화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때론유쾌하게, 때론날카롭게, 때론가슴뭉클하게깨우쳐

줍니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백차별이 남아있는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이라면 누구도

차별로부터 예외일 수 없습니다. 비슷한 시절을 그린 영화

<헬프>

(2011년)

의 가사도우미들, <히든 피겨스>

(2017년)

의 미

항공우주국 비행연구소의 여직원들도 그

랬으니까요. 돈 역시 백인들의 연주에 초

청되지만, 식사는 함께하지 못합니다. 화

장실 사용도 금지입니다. 심지어 양복점에

서새옷을한번입어볼수도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전통이고 규칙이라고 말

합니다. 비뚤어진 눈과 기울어진 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무지와 맹목에 맞

서 이기려면 폭력이 아닌 품위, 틀을 깨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식당 출입을 막자

버밍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거부하고 대

신 길 건너 흑인 식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신나게 연주하는

돈과그의선택에진심으로박수를보내는토니처럼.

정반대처럼 보였지만 토니와 돈은 결국 같은 존재였습

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백인이면서 백인에 속하지 못하

는, 흑인이면서 흑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흰 돌들 가운

데 놓인 검은 돌’이었던 거지요.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진

정한우정은피어납니다. 타인에대한이해와사랑, 존중의

시작은 이렇게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여는 것인가 봅니다.

사마리아여인에게기꺼이다가간예수님처럼.

이대현

요나

|

국민대겸임교수, 영화평론가

2019 감독_피터패럴리감독

영화칼럼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