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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9월 29일전세계에놀랍고슬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요한 바오로 교황님

께서심장마비로급서

(急逝)

하셨다는소식이

었습니다. 교황님의 서거 소식은 전 세계를

충격에빠뜨렸습니다.

세계 천주교는 바오로 6세 교황님 선종

이후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교황님에 대해 한껏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

다. 그동안 요한 바오로 교황님께서 사목자

로써 걸어온 길과 그의 학구적이고 인자한

모습에서 세계 가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일

반인들도 많은 호감과 기대감을 갖기에 충

분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인자하신 새

교황님을 교회에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

사하는분위기였습니다. 요한바오로교황님은일반대중에

게 초점을 맞추는 사목 활동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베네치

아의 총대주교로 임명된 후에는 ‘성공회, 로마 가톨릭교회

국제위원회’ 회의를포함하여다섯개의교회일치회의를개

최했었습니다. 그는 교구장 시절 교회의 장식을 싫어했고,

값비싼성작이나교회의귀중품을팔아가난한이들을돕도

록 본당신부들에게 권장했었습니다. 특히 제3세계의 가난

한 교회를 돕는 데 써야 한다고 나눔을 주장했었던 인물입

니다. 그의 교황 선출도 추기경단 대다수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교황을 원했음을 반영한 결과였다고 알려져 있습니

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교황님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후

보자’로서 환영받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두 전임 교황인 요

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전통을 따르면서 진보적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원의를표현하는것입니다.

겸손한 요한 바오로 교황님은 허세와 허례허식을 싫어

해 화려한 전통적 교황 대관식을 생략하고,

베드로 광장에서 팔리움을 받는 것으로 최

고 목자로서의 사목직을 시작했던 인물이

었습니다.

서울주보는 10월 8일 주보 3면에 사진과

함께 요한 바오로 교황께서 지난 9월 29일

새벽 심장마비로 갑자기 서거하셨다는 소

식을 ‘요한 바오로 교황님 급서’라는 제목으

로 실었습니다. 이 뉴스를 접한 김수환 추

기경님의 당혹하고 슬픈 심경도 다음과 같

이전하고있습니다.

너무나큰충격이다. 취임하신지 26일만에돌아가시

다니 교회를 위해 큰 불행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오늘

날의교회에큰시련을주시는것같다. 요한바오로교

황께서선출되셨을때우리모두가만족했었다. 이시대

가진정으로요구하는교황님이셨다. 교회뿐만이아니라세계가요구하는

교황님이셨다. 짧은만남이었지만그분은남의사정을, 특히어려운사람들

의사정을이해하시려고하는교황님이셨다는사실을깊이느꼈었다. 너무

억울하다는심정이다. 참으로좋은분이셨다. 하느님이너무일찍데려가신

것같다. 다른말은할수도없는심경이다.”

요한 바오로 교황께서는 불과 1개월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이었으나 벌써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혼신을 다하여

세계의구원을위해봉사하겠다는자세를역력히드러내셨

던 분입니다. 인간의 인권 옹호를 위해, 특히 소수 무력한

사람들의 존엄과 권익의 보호를 위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함

께협력해줄것을당부하셨습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의 첫 교황이고, 친근한 미소로 사람들

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요한 바오로

교황님이오랫동안교회를지도했다면어떤변화가왔을까

지금까지도아쉬워하는사람들이많습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홍보위원회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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