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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ਔ ੈ

말씀

이삭

김해선

비비안나

|

시인

초콜릿세알과140원

감기를 앓고 나서 천천히 걷고 싶었습니다. 친구에게

책 한 권 보내기 위해 우체국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남아

있는 감기 기운에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지만 걸을 만했습

니다. 우체국에서 주소를 쓰다가 잘 못 쓰는 바람에 다시

새 봉투에 주소를 쓰고 창구에 책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

습니다. 빠른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하며 카드로 결제하려

는데 ‘봉툿값 140원’은 카드 결제가 안 되고 현금으로 내

야 한다는 겁니다. 카드밖에 없던 저는 당황했습니다. 30

분을 걸어서 왔는데 다시 집에 갔다 올 생각을 하니 난감

했습니다. 동전 십 원이 부족하면 급할 때 공중전화도 못

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를 어쩌죠. 제가 집에

가서 140원을 가져올게요”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데 뒤

에서 “여기요, 여기 있어요”라면서 200원을 내미는 손이

있었습니다. 소포에 테이프를 붙이면서 내미는 손에 들어

있는 200원을 받았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해요.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하면서 머뭇거리자 “아닙니다, 괜찮아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면서도

남은 60원을 고마운 그분께 드리기엔 왠지 손이 부끄러웠

습니다. 순간 가방에 들어 있던 초콜릿이 생각나서 은박

지에 쌓인 초콜릿 세 알과 함께 남은 돈 60원을 내밀었습

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 그분께, “받아주세요. 감사

의 마음이에요” 하며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회색 구름 사이로 해가 보였습니다. 희부옇게 먼지 낀

창문을 달고 달리는 마을버스도, 매연을 내뿜고 가는 용

달차도 경쾌하게 보였습니다. 아직 미열이 남아 있었던

감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40원을 가지러 다시

집으로 가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는, 그저 난감한 상황의

누군가를 향한 사심 없는 배려가 새삼 감사하고 기분 좋

았습니다. 200원을 내민 그 누군가의 손을 통해서, 목마

를 때 한 모금의 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사소하고 작은 일에 대해서 그냥 지나치

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마을

버스 바닥에 떨어진 우산을 주워준다던가 물건을 들고

내리는 사람에게 먼저 내리라고 하는 등 용기를 내어 먼

저 손을 내밀어 보기도 합니다. 큰일을 당했을 땐 너도나

도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 일들은 많습니다. 이 또한 아름

다운 일이지만 200원을 내밀던 낯선 손길에서 아주 작은

일, 눈에 띄지 않는 일들에 대한 소중함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복음

묵상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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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율리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