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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일광 시몬. 내가 살던 조선의 철저한 계급사회 속에

서백정은인간이하의치욕적인삶을살았습니다. 노비, 무당,

기생 등 여러 천민 중에서도 가장 멸시받는 ‘천한 것’이었어요.

백정인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마을을 이뤄 모여

살았고 다른 계급의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1792년무렵나는홍주를떠나홍산땅으로이주했습니다.

그러다우연히이존창루도비코형제에대한소문을들었습니

다. 그를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됐

죠. 그 이후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동생 차돌이

와함께경상도땅에서살게됐습니다.

그곳에서만난교우들은나의신분을모두잘알고있었죠.

하지만 교우촌에는 신분질서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신

앙의 벗으로 대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줬어요. 우리는 천

주 안에서 굳은 신앙심으로 뭉쳐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

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하나였습니다.’

(갈라 3,28)

동생과 나

는 서로를 붙잡고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취

급을 받던 내가 양반들과 어울려 천주학을 논하는 이 상황을

상상조차할수있었겠어요? 나에게천당은이세상에하나가

있고, 후세에하나가있음이분명했습니다.

그렇게 현세의 천당에 살던 중, 한양에 있는 정약용의 형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를 찾아가 그 집의 일을 도우며 신앙생

활을 하게 됐습니다. 양반인 정약종 형제와 나는 함께 기도하

고 한 밥상에서 밥도 먹었죠. 주문모 야고보신부님께 세례도

받고 미사에 참례하며 내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천

주로 인해 나 자신도, 나아가 천민 중의 천민인 백정도 천주

에버금가는소중한존재임을깨닫게됐어요.

1801년신유박해때, 나는땔나무를하러갔다가포졸들에

게 체포돼 옥으로 끌려가게 됐습니다. 여러 차례 문초와 가혹

한 형벌을 받으며 살이 찢기는 고통에서도 나는 오직 천주만

생각했어요. 물론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두렵진 않았

어요. “만 번 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천주님을 배반하지 않

겠다”라고 보란 듯이 소리쳤습니다. 관리들은 내 한쪽 다리가

으스러질 때까지 더욱 혹독하게 매질하더군요. 고향 홍주로

이송돼 참수되기 전까지 내 아내와 아들을 보면 혹여 마음이

약해질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천주께 갈 준비가 됐기 때문이죠. 그렇게 저는

두번째천당에들었습니다.

나와 정약종,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124위는 2014년 프란

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종교의 자유

가 보장된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우리와 같은 순교자가 될 수

없을까요? 목숨을 바친 것만이 순교는 아닙니다. 일상생활에

서의 순교를 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자

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리고 주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

다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세요. 가장

소외된 이웃들과,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

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더 나아가

후손들에게 순교자들의 영성을 삶으로써 증언해주세요. 물론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 시대의 순교가

아닐까요?

구여진

플로라

|

서울대교구홍보위원회

복자 황일광 시몬의 편지

‘나의 순교, 당신의 순교’

[신앙+]

오늘 한국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

교자들 대축일을 이동하여 경축합니다. 한국교회는 103위 성인, 124위 복

자 등 수많은 순교자가 흘린 피로 세워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교회입니

다. 자랑스러운 신앙선조들이 물려준 신앙을 우리는 어떻게 지켜야 할까

요? <가톨릭+서울>은 천민 출신 복자 황일광 시몬

(1757~1802)

의 삶과 신

문 기록을 토대로 하여 복자 황일광 시몬이 현시대 신앙인들에게 들려주

고 싶은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