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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의
삶
글_
서희정
마리아
|
그림_
홍미현
세레나
원수를마주한순간
성요한
괄베르토증거자
(축일: 7월12일)
기회가 왔다. 형의 원수를 갚을 시간이 드디어 내게 찾
아왔다. 요리조리 용케 도망 다니던 녀석이 눈앞에 나타
난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칼을 내 손
에 쥐여주며 말씀하셨다.
“부디 형의 원수를 갚아다오.”
빛이 모두 함몰되어 버린 얼굴이었다. 내 평생 그런 절
망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사나
이로 태어나 혈육의 원수를 두고 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동안 하루에도 열두 번
씩 저자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을
실현할 때가 왔다. 형이 당한 것과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 고통스럽게 저놈을 죽여 버릴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
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자에게 다가간다.
그자가 뒷걸음질 친다. 소용없다. 뒤에는 막다른 골목
이다.
나를 본 그자의 눈에 공포가 차오른다. 소용없다. 형은
이미 죽었다.
캉- 기다란 칼이 오래된 증오를 뽑아 올렸다. 이제 펄
떡이는 저자의 뜨거운 심장에 차가운 나의 증오가 박힐
것이다.
철퍼덕- 갑자기 그자가 땅에 엎어져 두 팔을 벌린다.
이제 와 두려운가? 후회하는가?
“죄 많은 이를 대신하여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합니
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부디 저를 용서하여 주
십시오. 오늘은 성금요일이 아닙니까.”
성금요일- 쳉그렁-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칼이 힘없이
떨어진다. 혈관 속을 타고 흐르던 펄떡이는 분노가 땅 밑
으로 몽땅 쏟아져 내린다. 예수- 이웃을 사랑하라 끝없이
외치던 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
하라 하신 분,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신 분, 십자가 위에서
조차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분. 그분의 이름으로 청한다
는 말이 왜 이토록 가슴을 둥둥- 울리게 할까.
투둑-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복수- 소용없다. 형은 이미 죽었다.
“주님께서 저의 죄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당신을 용서
합니다. 부디 우리 형과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십자가 모양으로 엎드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를 안
았다. 오직 증오로 채워 온 나의 뜨거운 혈관에 무언가 새
로운 것이 채워져 흐르기 시작했다. 그 전의 뜨거움과는
다른 따스함으로.
*덧: 그 후, 성 요한 괄베르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
는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으나 당시 교회는 여러모로 부패
하였다. 이에 성 요한 괄베르토는 교회 정화를 위해 노력
하였고, 마침내 발롬브로사 지역에 오직 기도와 고행만을
수도 생활로 하는 공동체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