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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의
삶
고통이고통인이유
성녀발비나
글_
서희정
마리아
|
그림_
홍미현
세레나
(축일: 3월31일)
발비나의 방은 어둡다. 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모두 막은 탓이었다. 누구라도 들어올라치면 발비나의 날
카로운 절규가 터져 나왔다.
“들어오지 마! 나가! 나가라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
소리의 끝은 늘 울음이었다. 괴로움이 묻어있는 그 울
음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보이
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스럼으로 뒤덮인 끔찍한
자신의 얼굴과 목을 말이다. 그런 딸을 바라봐야 하는 귀
리노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
도 고통 속에 있는 딸을 건져 올리고 싶었다.
“약이란 약은 다 써 봤잖아요. 용하다는 의사도 다 찾아
가 봤잖아요. 점도 쳐보고 신이란 신은 다 믿어봤잖아요.
난 틀렸어요. 틀렸다고요.”
처음에는 그녀에게도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기필코 낫고 말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아버지 덕분에 재산도 충분했다. 그녀를 사랑
한다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이 아니었다. 그녀 곁에 있던 사람들도 그녀의 변한 얼굴
을 보고 산산이 흩어졌다. 이제 그녀 곁에 남은 건 아버지
와 고통뿐이었다.
“아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 애비를 봐서라도 한 번만
같이 가자꾸나.”
발비나는 마지못해 아버지를 따라 감옥으로 향했다. 그
녀를 낫게 해 줄 이가 그곳에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를 믿
는다는 이유로 갇혀있다고 했다. 그리스도. 낯선 이름이
었다.
남자를 본 순간, 역시 괜한 걸음을 했다고 생각했다.
수갑이 무색할 정도로 마른 손과 피땀으로 얼룩진 얼굴이
자신보다 더 비참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리스도 교회의 두목이 맞소?”
아버지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곁눈질로 남자의
눈을 본 발비나는 흠칫 놀랐다. 고통과 어울리지 않는 눈
이었다. 분명, 모양은 달라도 발비나도 남자도 고통 중에
있음이 확실했다. 그런데 남자는 마치 평화 속에 안겨 있
는 듯 잔잔했다. 미소를 짓고 있는 듯도 보였다. 발비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귀리노 역시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당신이 내 딸을 낫게만 해 준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리스도를 믿겠소. 그러니 제발 내 딸 좀 낫게 해 주시오.”
남자는 그리스도라는 이에게 기도를 올린 후, 수갑을
찬 손을 내밀어 발비나의 얼굴에 대었다. 그 순간, 발비나
는 알았다. 그동안 자신이 왜 고통 중에 있었는지. 남자의
평화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덧: 성녀 발비나의 병을 고쳐 준 남자는 성 알렉산데
르 교황이다. 이후, 성녀 발비나의 가족은 모두 세례를 받
았으며, 아버지 귀리노는 순교하여 성인품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