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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대성당의

‘명례방집회’

보물

우리곁의

우리가즐겨찾는명동대성당에는여러성상과성화가있

습니다. 이런 성물을 통해서 사람들은 신앙의 세계에 한 걸

음더가까이다가갈수있습니다. 성당의외부에는예수상,

성모마리아상, 가시관을쓴예수두상, 성김대건안드레아

신부상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여러 성상과 함께 성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이승훈, 이벽,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김

범우, 명례방집회, 79위복자화등을볼수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도입은 선교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특하게도학자들이천주교에관한학문을연구하다가신

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신앙 선조들은 1784년 교회 창설

직후에 명동대성당 부근의 명례방에서 교리 공부를 하고

기도하면서신앙을키웠습니다.

1984년에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 및 103위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몇 점의 성인화

가 제작되었는데 김태

(1931~, 바오로)

화가의 유화 작품 ‘명례

방집회’

(257x180cm)

도그가운데하나입니다.

화가는 “우리나라의평신도학자들이천주학을연구하다

가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점을부각하기위해깊이고민했다”라고말했습니다.

조선의 유교 사회에서 남녀가 구별되었기 때문에 여기

서는 23명의 남자만 표현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었는데 이벽 세례자 요한은 하늘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

습니다. 그가천상의진리에대해가르친다는것을알려줍

니다. 큰 갓을 쓴 양반뿐 아니라 작은 갓을 쓴 중인과 패랭

이를쓴상인, 흰수건을맨평민이한방에있습니다. 모두

앉아 있지만 명례방 집 주인 김범우는 일어서서 늦게 도착

한중인과평민을따뜻이맞아들입니다.

조선시대의철저한계급사회와는대조적으로천주교회

에서 사람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

지의 한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 작품에서

도모든사람을귀하게여기는분위기를느낄수있습니다.

이벽의 책상 위에는 십자고상과 책이 있습니다. 그는 오

른손을 들어 천상 진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펼

쳐진 ‘천주실의

(天主實義)

’의 내용을 짚고 있습니다. 이 책은

중국 선교에 몸 바쳤던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신부 마태

오리치가지은교리서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고상을 가운데 모시고 둥글게 앉아 있지

만 앞자리 한 곳은 비어 있습니다. 이곳은 신앙 선조들이

후대에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 자리입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가 이 자리에 앉음으로써 주님을 가

운데 모신 신앙 공동체는 비로소 영원을 상징하는 원으로

완성됩니다. ‘명례방 집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신앙 선

조들은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교리

를 배우고 익혔습니다. 나아가 당시 사회 안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품어 주며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묵묵히 실천한 신앙인들을 보

면서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고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신앙

을 고백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이들의 신앙은 세상의

그어떤박해로도꺾을수없을만큼강인하였습니다.

정웅모

에밀리오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유물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