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Page  4 / 13 Next Page
Information
Show Menu
Previous Page 4 / 13 Next Page
Page Background

ࢮਊભ߽

“관상적 시각”

우리는생명을경축하는관상적인시각을길러야합니다.관상적시각은모든사람을창조하신생명의하느님께대한신앙에서생겨납니다.생

명을하느님의선물임을믿으며,모든사람안에서그분의살아있는모상을바라보는일이라고생각하는사람들의시각입니다.병들고,고통받

고,죽음의문턱에서있을때에도실망하여포기하지않으며,이러한상황속에서도의미를찾게합니다.

(생명의복음83항참조)

글_

생명위원회

생명운동

라리보 주교님에 대해 굿뉴스 안에서 검색하다 보면, 연

관검색어로후임교구장이신노기남주교님이함께나오십

니다. 라리보 주교님 이후로 한국의 주교님이 서울 교구장

이 되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사임할 때

까지’라는 표현을 보면서 이전까지의 교구장님들과는 달리

사임하는단계를거치셨음을알았습니다.

‘1916년에는 서울대교구의 당가신부가 되어 교구 살림을 맡아 보았고,

1926년에보좌주교인드브레

(Devred, 兪世俊)

주교가사망하자, 그뒤를이어

계승권을가진보좌주교로임명되었다. 그해 5월 1일성성식을갖고는뮈텔

(Mutel, 閔德孝)

주교의 위임으로 실질적으로 서울대교구를 다스렸다. 1933년

에 뮈텔 주교가 사망하자 자동적으로 그의 뒤를 이어받아 서울 교구장으로

취임, 1942년 1월 5일 사임할 때까지 일제하의 어려운 시기에 서울대교구를

무사히이끌어나갔다.’

8대 교구장이신 뮈텔 주교님이 오랜 시간 서울대교구를

지탱해주신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옆에서 든든하게 함께

일하셨던라리보주교님의공이크지않나생각합니다. 실제

로주교님은1907년새신부님이되신후에바로서울에들어

오셨고, 1942년까지 근 10년 동안 교구장직을 수행하신 것

까지, 35년 동안 파견된 선교사 교구장으로서 얼마나 애쓰

셨을까요? 사실 저에게는 라리보 주교님을 이어 노기남 주

교님이후임교구장이된경위도정말하느님께서주교님을

이끌어주신것이아닌가생각합니다.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더욱 교회를 탄압하여 외국인 성직

자를 구금 추방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게 됨에 따라, 라리보 주교는 사임할

것을 결심하는 동시에, 조선 교회의 보존을 위해 한국인 성직자를 주교로

임명해줄것을로마교황청에요청하였다.’

1942년이면 한창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한 때일 텐데 앞

으로 조선 교회와 서울대교구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

주어야 할지 오랜 시간 고민하셨던 것을 느끼게 합니다. 드

디어 한국인 성직자가 주교로 임명되어 직접 서울대교구를

챙길수있게열어주심은조선교회선교의한획을그어주신

커다란공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서울교구장님들한

분한분이어떻게사셨고돌아가셨는지그길을함께걸어보

지않았다면, 언제부터방인신부님이주교가되어서울대교

구를 다스렸는지 찾지 않았으면, 라리보 주교님이 왜 주교

직을 사임했는지도 저는 여전히 모를 것입니다. 라리보 주

교님께서는 ‘이후 1948년 충남지역의 포교책임자가 되었고,

1962년교계제도의설정과더불어정식교구로승격됨과동

시에대전교구장이되었습니다. 근58년간한국교회를위해

애쓰신 주교님을 기억합니다. 조선 교회와 서울대교구를 위

해 한국인 주교님을 추천해주심도 함께 기억합니다. 고맙습

니다우리주교님.

역대

교구장

올한해동안서울대교구역대교구장에대해아주작은퍼즐이라도함께찾아보고, 그분들의마음을공감하는시간을가졌으면좋

겠습니다. 아무리좋은것이라도직접찾아보고, 생각하고, 공감하지않으면나와상관없기때문입니다. 오늘의서울대교구가있기까

지헌신하신교구장들의삶이주는울림을전합니다.우리가찾은서울대교구아홉번째교구장님은라리보주교입니다.

09

9대교구장

(프랑스) 1933년~1942년

라리보

(Larriveau,원형근)

주교

이도행

토마스신부 | 홍보위원회사무부국장

· 1907년3월10일서품.같은해5월21일조선입국.

· 1926년 12월 14일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듬해 5

월1일주교로성성됨..

· 1933년1월23일교구장승계.

· 1942년1월에은퇴하였다가1958년에초대대전교

구장을역임.

· 1974년8월12일선종.

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