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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란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창조활동에 특별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사람을남자와여자로만드신하느님께서친히당신의창조활동에인간을특별히참여시키길바라시어남자와여자에게복을내려

주시며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낳고번성하여라’

(창세1,28참조)

따라서출산이란남자와여자가하느님의창조활동에 ‘특별히참여한다는것’

을말하며 ‘자녀를잉태한다는것’은매우인간적이고충만하고특별한축복의의미를지니는사건입니다.

(생명의복음43항)

글_

생명위원회

생명운동

8대 교구장이신 뮈텔 대주교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순

교자들의꽃을피어나게하라’는그의표어에서도알수있듯

이순교자들의행적을중심으로한순교자현양과한국천주

교회사의 정립, 그리고 순교복자의 시복 등으로 꼽을 수 있

습니다. 이러한노력은열매를맺었는데 1925년 7월 5일, 그

의 오랜 숙원이던 한국 순교복자 79위에 대한 시복식이 교

황비오

(Pius)

11세에의해거행되었다는것을확인할수있고,

1968년도에는 24위의 복자들이 추가로 시복되었다는 것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굿뉴스 참조)

결국 1984년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103위의 순교성인들이 우리나라

에서시성되었다는것을기억할때, 그시작은 1925년의시

복식이라는것을알수있습니다.

하느님을 증거하고 그분과 그분의 말씀으로 순교하는 이

들과 그 순교자들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이

어떻게순교했는지알고, 그일들을전하고정리하는사람이

있어야만 뒤따라오는 사람이 알게 됩니다. 어쩌면 후손들에

게정말필요한일을차근차근알려주신분이뮈텔대주교님

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뮈텔 대주교님이 교구장으로 계셨던

재임기간이 44년에이르는것을볼때, 그리고그재임기간

거의 매일 작성한 뮈텔 일기에 교회 내외의 주요한 사건들

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교님이 얼마

나 꼼꼼한 분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방대한 뮈텔 문

서를통해서도주교님의열정이전해집니다.

(1871년~1925년까지

총 13,451건에달하는교회사및한국사와관련된내용의문서: 서한(書翰)·공문(公

文)·신문기사(新聞記事)·전보(電報)·유인물·명함(名啣)·안내장·외교문서(外交文書))

본당을 운영하면서 사무실에서 작성하는 본당 사목일지를

확인하고사인하는것만으로그쳤던제모습이부끄러워집니

다. 바로그사목일지와매주본당주보의알림란이그본당의

역사를확인할때제일중요한1차자료가될터인데, 많이소

홀히했었습니다.지금도대주교님에대해서검색을하면뮈텔

일기와뮈텔문서도함께전해지고있고,구한말의우리나라가

어떻게그힘들때를버티어냈는지도알게하는직접적인원사

료로 인정되고, 지금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번역중이거나

연구중인것으로전해지고있습니다. 우리나라가역사적으로

도힘들었을그때,교회를지탱하고순교자들을현양하기위해

애쓰셨던주교님을기억하면많이죄송합니다.그때의그노력

의열매는2014년8월 ‘윤지충바오로와동료123위’의시복까

지이어졌음을기억합니다. 주교님께서애쓰심을잊지않겠습

니다.고맙습니다.우리주교님.

역대

교구장

올한해동안서울대교구역대교구장에대해아주작은퍼즐이라도함께찾아보고, 그분들의마음을공감하는시간을가졌으면좋

겠습니다. 아무리좋은것이라도직접찾아보고, 생각하고, 공감하지않으면나와상관없기때문입니다. 오늘의서울대교구가있기까

지헌신하신교구장들의삶이주는울림을전합니다.우리가찾은서울대교구여덟번째교구장님은뮈텔대주교입니다.

08

8대교구장

(프랑스) 1890년~1933년

뮈텔

(Mutel, 민)

대주교

이도행

토마스신부

· 1877년2월24일서품.

· 1880년11월조선입국.

· 1890년교구장임명.이듬해로마에서주교성성식

을갖고, 다시조선에입국하여명동대성당을완공

하였으며, 교세확대와조선순교자들의시복에노

력하여1925년7월5일에79위복자를탄생시킴.

· 1920년 교황청으로부터 백작작위를 수여받았고,

1925년3월에대주교로승품됨.1933년1월23일선종.

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