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Page  5 / 13 Next Page
Information
Show Menu
Previous Page 5 / 13 Next Page
Page Background

֕ ਔ ੈ

사회사목국

기획특집

예전에 어느 대학교 인권수업 때 교수님이 졸업반 학

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학교를 졸업한 후 어떻게 불리길 원하십니까? 1번 직장

인, 2번 회사원, 3번 근로자, 4번 노동자…. 어느 것인지

요?” 학생들의 대답에서 어떤 항목이 가장 많이 나왔는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엇이 제일 인기 없었는지는 쉽

게 알 수 있어 보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노동자’라는 말

이었습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이 안에서 우리는 평소에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직장

인이나 노동자나 사전적 의미에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

는 노동자라는 말을 더 싫어합니다. ‘노동’이란 말을 들

었을 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도 공장의 기계, 건

설현장의 도구들, 혹은 힘들거나 하기 싫은 것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 중에는 ‘노동’이란 말을 들으면 노동조

합-파업-폭력시위 등을 연속적으로 떠올리는 분들도 종

종 있습니다. 아마 텔레비전 뉴스에 노동을 다루는 기사

가 나오면 주로 등장했던 배경화면이 그러했기에 무리도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이 폭력시위

는결코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노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복음의 가치관 안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를 드러낼까요?

사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

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창세 2,2-3절)

라고 전합니

다. 그렇다면 하느님도 일

(노동)

하셨고, 당신의 모습을 닮

아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 노동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고 돌보는 것, 그것이 바

로 인간노동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는 성자 예수 그

리스도께서도 평생 목수로 사셨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납

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노동자로 사셨고, 당신 제자

들도 노동자

(어부)

가운데 뽑았으며, 말씀에서도 진주 상

인, 포도밭 소작인, 씨뿌리는 농부 등의 비유를 들어 하

느님 나라를 전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전하는 노동

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 창조의 연속, 인간 실존적 가치

를 이야기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바로 노동 안에서 실현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산업사회 안에서 노동은 생산의 도구 중 하나

로 효율적인 경제 만능주의 안에서 비용으로 인식됩니

다. 그러다 보니 고용은 비정규직이나 대량해고의 문제

를 일으키고, 임금은 가장 적게 지급해야 하고, 노동자의

안전보단생산량의증대에더큰관심을나타냅니다.

노동사목위원회는 노동의 문제로 많은 이웃들이 힘겨

워하던 1971년 김수환 추기경님에 의해 시작해서 올해

로 46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반백 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도 노동은 복음의 가치가 아닌 부정적 이미지 속에 갇혀

그 풍요로움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노동사목위원

회는 오늘도 여러 노동문제 안에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

고, 교회가 사회교리에서 가르치는 노동을 알리기 위한

교육사업에헌신합니다. 또한평신도사도직단체인가톨

릭노동청년회, 가톨릭노동장년회, 어린이사도직 운동을

장려하고,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노동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복음적 가치의 노동을

이룰수있도록교우님들의관심과격려를청합니다.

사회사목국

노동사목위원회

정수용

이냐시오신부 | 노동사목위원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