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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정규직 프리랜서입니다. 주로 방송 구성작가 일

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 탈북민, 결혼 이주 여성

들을주인공으로하는휴먼다큐멘터리프로그램을제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20대 후반, 긴 방황 끝에 이 일을 만났

을 때 주님의 부르심을 느낄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원고에

주님의 말씀을 담아 미디어를 통해 널리 전하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궂은일도 힘든 줄 모르고 기쁘게 임했습

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멀쩡

히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인데도 ‘개편’이란 이름으로 언제

든 자리가 사라질 수 있었고, 어렵게 좋은 프로그램에 들어

가도이일을언제까지할수있을지몰라작가구인게시판

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렸습니다. 면접도 수없이 봤습

니다. 늘 지긋지긋한 구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

지만, 오히려 주님은 구직의 경지에 오르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통조림 유통기한

을 본 순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8~9년은 충분히 보

관할수있는그신뢰의기간. 전그뚜껑에찍힌그연도와

날짜에제가어디서무슨일을하고있을지상상이되지않

았습니다. 가공식품보다 짧고 불확실한 제 신세가 씁쓸했

고 하느님은 왜 저를 안정적인 직장에 허락하지 않으셨는

지 불평했습니다. 이런 소모적인 고용 불안과 구직의 굴레

에서벗어나면더좋은방송을만들고감동적인글을쓸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청년성서모임에서 한 그룹원

의나눔을듣게됐습니다.

어떤 빵을 만들던 사람이 사진에 흥미를 느껴서 사진을

찍다가 사진사가 되자,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사진 찍는

제빵사인가, 빵을 굽는 사진사인가?’를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것에 비길 수 있다는 나눔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직장을 다니는 신앙인’인가? 혹은 ‘신앙을 가

진 직장인’인가? 말입니다. 전자라면 직장이 있건 없건 하

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

을 가진 직장인으로 산다면 직장이 사라지는 순간 신앙마

저도흔들릴수있습니다.

주님은제일을하루아침에앗아가기도하고때로는감당

할 수 없이 많은 일을 몰아주기도 하시면서 직장을 성전 삼

으려는그유혹을깨우쳐주셨습니다. 그리고사람을만드신

목적이 반드시 일하거나 벌이를 위한 것이 아님을, 또한 우

리각자에게주신직장이나일터는그리스도의사랑을실천

하라고보내신현장임을깨달았습니다. 하느님울타리안에

있다면 제 유통기한은 통조림 따위에 비할 수 없이 무한하

고영원합니다. 2023년이시작되는오늘! 하느님은저를종

이아니라사랑하는자녀로빚으셨음을믿고언제나필요한

복을 주신다는 것에 감사하며 희망찬 새해를 시작합니다.

말씀

이삭

내유통기한은?

김정은

로사

|

방송작가

한컷으로보는

교회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