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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에던져진천사를위한기도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T.S.엘리엇의 시
<황무지>는 “샨티. 샨티. 샨티”로 끝납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영화 <로마>도 “샨티. 샨티. 샨티”로끝을맺습니다.
고대 인도의 경전 <우파니샤드>의 결어인 ‘샨티’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평화’라는 뜻입니다. 피폐화된 인간성과 인
간문명을날카롭게해부하며부활과구원
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황무지>는 <로마>
의이해를위한길잡이역할을합니다.
1971년 멕시코 독재 정권의 사주를 받
은 극우 테러 단체가 반독재 민주화 운동
의 시위대를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성체축일대학살’ 사건. 그전후의역사적
격변기가 <로마>의시대배경입니다. 인종
과성차별, 계급착취, 야만적인폭력이난
무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혼돈의
삶을살면서희망의출구를찾지못합니다. 그들이살고있
는세상은시 <황무지>의어부왕이다스리는저주받은땅,
황무지와다름없는것입니다.
백인 가정의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사적인 기억의 파편
들을 씨줄로, 혼란스러운 사회 풍경과 역사적 사건들에 대
한 공적인 기억의 파편들을 날줄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갑
니다. 엘리엇과 함께 문학의 모더니즘 운동을 이끈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오로지 ‘파편적 구조’를 통해서만 극도로
혼돈스러운 현대 문명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
다. <로마>는바로이파편적구조를통해야만적인사회에
서의비극적인삶의단면들을세밀하게해부합니다.
극우 테러 단체의 훈련 모습, 대학살의 거리 풍경, 사산
된 아이를 인공호흡으로 살리려는 분만실 모습, 기르던 개
들을박제하여벽면에걸어놓은부르조아집풍경등이영
화는 섬뜩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감독은 묻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 황무지에서 구원할 수
있을것인가?
시 <황무지>에서 가뭄의 재앙을 받은
땅에 구원의 비는 내리지 않고 마른 천둥
소리만 들립니다. “다, 다, 다.” 시인이 ‘주
라, 동정하라, 자제하라’로 해석한 이 천둥
소리는인간을향한구원의가능성을열어
둡니다. <로마>의마지막장면에서감독은
빨래 꾸러미를 한아름 안고서 높은 계단
을 올라가는 클레오와 함께 옥상 위로 펼쳐진 하늘을 보여
줍니다. 영화에선 안타깝게도 마른 천둥 소리조차 없습니
다. 대신, 비행기 소리와 개 짖는 소리 등 일상의 소음들만
들려옵니다. 하늘은 어떠한 구원의 메시지도 들려주지 않
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인내심 있게 오랫
동안 하늘을 보여줍니다. 영화 화면이 다 끝나고 크레딧과
협찬사 로고까지 다 지나간 후 상영이 끝나기 직전에 자막
이 떠오릅니다. “샨티. 샨티. 샨티.” 감독이 황무지에 던져
진날개잃은천사들을위해던지는간절한기도입니다.
이광모
프란치스코
|
영화사백두대간대표
영화칼럼
2018년감독_알폰소쿠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