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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4박 5일 동안 우리
나라를 방문했습니다. 그해
3월부터 교황님 방문 준비위
원회가 발족했고 그해 4월
초에는 홍보, 전례 담당자
들이 로마에 가서 실무자 회
의를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교황청 해외 순방 책임자와
소통을 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
정을거쳤습니다.
한국에서 교황님의 마지막 일정은 명동대성당에서 ‘평
화와화해를위한미사’였습니다. 이미사에는신자뿐아니
라 타 종교 대표, 중고교생, 경찰관, 미화원 등과 사회 곳
곳에서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초청됐습니다.
실향민과 새터민, 납북자 가족들도 함께한 이 미사에 모두
1천여 명이 초청되었는데, 가장 큰 고민은 성당 맨 앞줄에
어떤 사람들을 배치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단체
가 맨 앞자리에 앉기를 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황님
과 직접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언론의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몇몇 단체들을 소개했고, 교황
청에서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답을 보내왔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맨 앞자리에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
다. 실제로 교황님은 미사 입장 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 건네드린 나비 배지도 제의에 달
고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교황청에서도 위안부 할머니
들이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는것을나타내는중요한대목이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언론
에 나올 때마다 돌아가신 어
머니의 말씀이 떠오르곤 합
니다. 그당시어린소녀들이
무섭고 떨리는 시간을 보내
야 했답니다. 저희 어머니도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끌려갈
까 봐 두려워 16세에 결혼하
셨는데, 어머니가 아는 친구
중에는 위안부로 끌려가 생사를 모르는 친구도 있다며 안
타까워하셨습니다. 여성으로써온갖곤욕을치르고목숨을
부지한 채 고국에 돌아와서는 죄인처럼 숨죽여 살았던 위
안부 할머니들의 삶은 과연 얼마나 힘들었을지, 사실 상상
조차 힘듭니다. 얼마 전 한 위안부 할머니께서 “여성으로
써 여러분들에게 미안합니다.” 하는 말씀에 목이 메였습니
다. 어린 소녀를 지켜주지 못한 힘없는 국가와 지도자들이
미안하지할머니들은잘못이없습니다.
2005년 8월 7일 서울주보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후원하는 연극 ‘나비’의 공연 소
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숨기고 싶은 분과 당당히
드러내고 맞서는 두 분의 할머니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서울주보를 가져가면 관람료의
30%를 할인해 준다는 언급도 있습니다. 서울주보가 우리
사회에 작은 평화와 화해를 만드는 선한 도구가 되었습니
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귀담아듣고, 피멍이든 아픔
에 공감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봅니다. 그분들 모두 꽃 같
은 소녀 시절을 되돌리는 희망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날기를
기원합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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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홍보위원회부위원장
희망의 나비
“꽃같은 소녀시절을
되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