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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란>은 개봉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많
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한국 영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이강재는 배 한 척 살 돈 벌어오겠다고 큰소리
를 치고 고향을 떠나 건달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세
월이 흐른 지금, 그는 청소년들에게 불법 비디오를 팔고, 동
네 구멍가게를 협박하여 자릿세나 뜯어내는 그야말로 한심한
삼류 건달 처지일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강재를찾아와아내사망소식
을 전해줍니다. 아내의 이름은 ‘백란’. 중
국식으로 발음하면 ‘파이란’입니다. 그런
데 강재는 중국인 아내의 이름조차 기억
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나름 까닭이 있
습니다.
파이란은 어머니가 죽고 난 후 그녀의
유일한 친척을 찾아 한국에 왔습니다. 그
런데 그녀의 친척은 이미 다른 나라로 이
민을 떠난 후였습니다. 갈 곳이 없게 된
파이란이 당장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하
는데 여권의 체류 기간이 짧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소개소
에서 제안한 방법이 위장 결혼이었고, 돈을 받고 일면식도 없
는파이란의호적상남편이된사람이바로강재였습니다.
파이란은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작은 어촌에 있는 세탁소
에서 힙겹게 보금자리를 잡습니다. 진심으로 강재를 남편으
로 생각하고 있었던 파이란은 혼인신고 서류에 붙어 있는 강
재의 사진을 바라보며 남편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그
리고 언젠가는 남편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그나마 평화롭던 파이란의 일상도 잠시, 그동안 잠잠했던 기
침병이 다시 도지고, 치료비를 구할 수 없었던 파이란은 결국
외롭게죽어갑니다.
난데없이 아내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게 된 강재는 사진을
통해 처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파이란의 유품
중 강재에게 쓴 편지 한 장을 보게 됩니다. 편지에는 결혼해
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 서툰 한글로 적혀있었습니다. 그 순
간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강재의 마음에 지금껏 경험하
지 못했던 따스한 온기가 한 줄기 햇살처럼 비집고 들어옵니
다. 그러자 강재의 영혼에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
니다. 마침내 강재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
버린 아내와 대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
이란의 유골함을 들고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편지
를 읽고 나서 오열하기 시작합니다. 강재
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온 따듯한 온기
는 강재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아본 진
심 어린 감사와 그리움과 사랑이었습니
다. 파이란의 순수한 사랑은 그동안 강
재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강재를 깨웠던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사람에게는 세 가
지 ‘자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자기’는 남이 아는 자기이며, 두 번째 ‘자
기’는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자기’이고, 마지막 ‘자기’는
자기도 모르는, 오직 하느님만 아는 ‘자기’라고 합니다. 세 가
지 ‘자기’ 가운데 진실 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기’는 본인
은 모르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을 닮은 자기’일 것
입니다. 그래서 어느 사상가는 인생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참다운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화
의 엔딩은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남들이 알고 있는 삼류 건달
강재로 보자면 처참한 비극이지만, 하느님이 아는 강재로서
는 참다운 자기를 찾은 후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
이하는해피엔딩일것입니다.
최종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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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2001 감독_송
해성
영화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