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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ਔ ੈ

말씀

이삭

주님의부르심

저는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개월씩 냉담을 했습니다.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시작된 냉담이 결국 고해성사에 대

한 부담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저에게 고해성사는 너무 큰

숙제였습니다. 어쩌면공포에가까웠습니다.

몇 년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낯선 길을 걷고 있었습니

다. 일찍 서두른 탓에 시간이 많이 남아 느릿느릿 동네를

구경하며 걷는데, 제 눈앞에 거짓말처럼 성당이 떡하니 나

타났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

다. 많은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도망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홀린 듯

성당으로들어섰습니다. 들어서자마자고해소의불빛이보

였고 저는 그 불빛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다시성당으로돌아왔다는안도감과그동안의냉담에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변 분들이 수군거리시더니

저를고해소맨앞에세워주셨습니다. 미사시작시간이얼

마 남지 않은 데다 아마 저에게 무슨 큰일이 있나 보다고

생각하셨던것같습니다.

저는 밀리듯 고해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또 눈물이 쏟아졌습

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냉담해

온 것에 대한 죄를 고백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뭐라고 하

실까?’ 심장이쿵쾅거리고머리가아찔했습니다. ‘어떤보속

을주실까?’ 빨리고해소를나가고싶은마음뿐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요? 나도 죄짓고 사는데?

나도 죄짓고 고해성사 드리고, 또 죄짓고 고해성사 드리고

그러면서 살아요. 죄짓고 성당에 와서 기도도 하고 고해성

사도드리고그러면되는거지, 뭐. 주모경 3번바치세요.”

황당했습니다. 신부님의 말투가 너무나 쿨하셨습니다.

마치친한친구가 ‘자식아, 괜찮아! 그게뭐라고울고있냐?’

하고는머리통을한대툭치는듯한그런느낌이었습니다.

눈물이 뚝 그쳤습니다. 더구나 주모경 3번이라니…. 몇

십년신앙생활을하며받았던보속중에가장가벼운보속

이었습니다. 아무튼 어리둥절한 채로 미사를 드리고 보속

으로 주모경을 3번 바친 뒤 성당을 나섰고, 뒤늦게 친구에

게달려갔습니다.

생각해보면모든게비현실적이었습니다.

하필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고, 제가 어

슬렁거리던곳에성당이있었고, 그순간이미사시간직전

이었고, 하필마음씨좋은분들께서저를고해소에밀어넣

어 주셨고, 또 처음 뵙는 신부님은 어쩜 그렇게 쿨한 분이

셨는지…. 이 모든 일이 십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

났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년간 쌓

이고 쌓인 나의 무거운 죄책감이 한없이 가볍고 산뜻해졌

다는것도믿을수없었습니다. 저는생각했습니다.

‘아, 주님이날부르셨구나….’

그날이후저에겐 ‘고해성사공포증’이사라졌습니다.

조한철

안토니오

|

배우

김상훈

마르코

수원교구일월성당

나를이끄는

성경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