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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5월 7일, 서울주보는 선교 발전의 역사적 사명을 띠
고 이 땅에 태어났다. 역사적 사명 운운하는 것은 1960년대 후
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한민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
녔던학생들에게는익숙한라임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
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
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자세를확립하
고, 밖으로인류공영에이
바지할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바를밝혀교육의지표로삼는다.…”
(1968년12월5일대통령박정희)
해방 후 대한민국의 교육이 이념, 목적, 철학, 방향이 없다고
해서대한민국의교육이나아가야할방향을정립하여국회의만
장일치 동의로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이다. 국민교육헌장은 초기
부터일본의메이지천황시대에제정한군국주의적, 국수주의적
인 교육칙어를 연상하게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집단주의적 가치
를담고있다는비판을받았다. 417자로짧지않은이헌장은떡
하니모든학교교실앞에대자보처럼붙어있었다. 더황당한것
은 각급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헌장을 모두 암기할 것을 강요
하기도 하였다. 나도 초등학교 때 국민교육
헌장을 암기하지 못하는 친구가 선생님에게
뺨을 맞거나 벌 서는 것을 본 적이 많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국민교육헌장 암송대회를
열기도 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웃어넘기겠지만 정부
공식 법정 기념일로 지내오던 국민교육헌장 선포기념일이 폐지
된 것은 2003년이 되어서였다. 1978년에는 실제로 국민교육헌
장을비판한대학교수 11명이해직되고일부가 ‘긴급조치 9호위
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했다. 1978년 당시 유신독
재 시절이어서 계엄선포와 국회해산 및 헌법 정지 등, 비상조치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었다. 당시에 술좌석에서 아무개가 대통령
을 비판했다가 귀신도 모르게 중앙정보부가 있던 남산
(?)
으로 끌
려갔다는 등 흉흉한 이야기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던 시절이
다. 그러니 당시의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 상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쯤에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서울주보는 이
처럼무시무시
(?)
한시대상황에서태어났다는것이다.
서울주보 2면에는 「누룩」이란 코너로 칼럼식의 글이 게재되
었다. 첫 글의 제목은 ‘홍보의 권리를 찾자’이다. 칼럼은 한마디
로 일방적인 홍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과 정확한 정
보의 확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정보
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기사 내용 행간에 감추어진 사
실과 기사에 드러나지 않은 이해관계나 주변 상황을 파악할 것,
선입견과 특정한 사상체계를 버릴 것, 주어진 정보가 인간의 문
화나 정신적 성장에 공헌하는가를 살필 것, 주어진 정보가 가톨
릭 신앙에 위배되는지를 살필 것 등 나름대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 한마디로 당시에 발표되는 모든 언론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선전포고 같은 이 칼럼을 당시에
불편해한사람들이적지않았을것이라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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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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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홍보국장
홍보의 권리
를 찾자
국민교육헌장선포식
(1968.12)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