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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남녀를함께창조하신하느님께서는이둘이 ‘서로를위한존재’가되게하셨습니다.그러나하느님께서는그들을반쪽으로나불완

전하게만드신것이아니라서로를인격적으로일치하도록만드셨으며이일치안에서상대를위한도움이될수있게되었습니다.

남성과여성은동등한인간성을지닌 ‘또다른나’이며동시에서로를도움으로서보완합니다.

(교회와여성39-40항)

글_

생명위원회

생명운동

서울말고도나는60개마을의성사집행을맡았습니다.산골에서는포교하는

것이신자들에게는덜어렵고선교사에게는덜고단합니다. 어느때는해면처럼

물을빨아들이는버선과짚신차림으로비와눈을무릎쓰고길을가야합니다.이

렇게8개월동안일을하고나면우리는지칠대로지치지만우리성직에주께서

내려주신축복을듬뿍안은채숙소로돌아옵니다.

(달레의『한국천주교회사』중에서)

사제로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은 성사 집행하는 순

간이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미사를 봉헌하고 고해성사

를주면서, 나스스로도성사의은총을받고주님과함께하

는 축복을 받는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사제로서 제일 중요

한 일은 바로 성사집행이라는 것을 베르뇌 주교님에게서도

배웁니다. 산골에숨어있는신자들을찾아가한사람한사

람의손을잡아주고미사영성체해주는일은, 사제밖에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 현재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는것을다시한번일깨워주셔서감사했습니다.

베르뇌 주교님이 남겨주신 일들의 흔적을 찾다 보면, 한

국천주교회에서 처음으로 채택한 공식 교리서 ‘성교요리문

답’이라는 책도 있습니다. 중국 교회에서 쓰던 이 책을 다

블뤼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도움으로 편찬해서 목판본으

로 만들어 신자들에게 보급한 것도 주교님이 해주신 일입

니다. 그러고보니우리는편하게우리말로된성경을읽고

미사를 하고 성가를 부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우

리말로된교리서가있고, 각종신심서적도조금만움직이

면 내 손에 들어오는 때입니다. 더 이상 감사하지 않는 것

도이상하지않습니다. 가끔멈춰생각합니다. 이런것들이

당연해지면, 십자성호가 빨라지고 기도가 급해지면 언젠가

나는아무생각도없이신앙생활을하지않을까하는….

“1861년에 나는 교황 성하께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

다. 하느님께서는선교사로서느낄수있는충만함에더하여

선교지의백성을위해순교할수있는은총까지주셨으니천

국으로들어가는그순간내가얼마나기뻤겠습니까?”

베르뇌 주교님은 ‘순교할 수 있는 은총’이라고 말씀하십니

다. 주교님은1866년3월2일의금부로이송되어사형선고를

받고, 7일새남터에서브르트니에르, 도리, 볼리외신부등과

함께 군문 효수형을 당했습니다. 주님을 알린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사형선고를받고, 끝내는주님의이름으로순교하셨던

베르뇌주교님을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주시는은총이얼마

나소중한것이지가르쳐주셨던것을기억합니다.성사를집행

하고그은총을나누는것이얼마나좋은것인지다시일깨워

주심을기억합니다.고맙습니다.우리주교님.

역대

교구장

올한해동안서울대교구역대교구장에대해아주작은퍼즐이라도함께찾아보고, 그분들의마음을공감하는시간을가졌으면좋

겠습니다. 아무리좋은것이라도직접찾아보고, 생각하고, 공감하지않으면나와상관없기때문입니다. 오늘의서울대교구가있기까

지헌신하신교구장들의삶이주는울림을전합니다.우리가찾은서울대교구네번째교구장님은성베르뇌주교입니다.

이도행

토마스신부

· 1837년5월20일서품.

· 1845년7월15일보좌주교로임명

· 1854년8월5일교구장직을승계함

· 1856년 초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다가

1866년의병인박해때체포되어

3월7일새남터에서순교함

· 1900년9월5일명동대성당지하묘지에안

치되었으며, 1968년복자품에오르고, 1984

년교황요한바오로2세에의해시성됨

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

04

4대교구장

(프랑스) 1854년~1866년

성베르뇌

(Berneu.장경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