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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9일

3

말씀

이삭

저는 엄격한 엄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

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했던 엄마는 어린 딸들에게는 거

역할 수 없는 존재였죠. 하지만 저는 그런 엄마 밑에서도

안 보이면 사고를 치는 몹시 별난 아이였습니다. 먼 곳까

지 다녀와야 할 일이 있을 때 엄마는 종종 세 딸 가운데

저만 데리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제가 없으면 책임감 강

한 언니와 얌전한 동생은 절대 사고를 안 쳤으니까요. 덕

분에 저는 엄마 따라 큰 시장이며 먼데 있는 친척집이며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사고뭉치 둘째

딸의 세상은 그렇게 열립니다.

어느 날 문득 신앙이 필요하다고 느낀 엄마는 딸 셋을

데리고 불광동 고갯마루에 있는 성당을 찾아갑니다. 언니

는 초등학교 4학년, 저는 1학년, 동생은 유치원생이었습

니다. 1학년이지만 학교를 일찍 들어가 아직 일곱 살이었

던 저는 주임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동생과 함께 유아세례

를, 엄마와 언니는 예비자 교리를 받아 신자가 됐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저 역시 주일 아침마다 들장미

소녀 캔디와 은하철도999의 유혹을 뿌리치고 성당에 가

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어찌 됐건 무서운 엄마 덕

분에 지금까지 주님의 그늘 아래 살고 있네요.

그 일은 열 살도 되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엄마

한테 연극표 세 장이 생겼나 봅니다. 당시 불광동에서 혜

화동은 버스를 갈아타고도 한참을 걸어야 갈 수 있는 아

주 먼 곳이었습니다. 혜화동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세 딸

모두 지쳐있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지금은 아

르코예술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문예회관소극장으로 기억

합니다. 표가 세 장뿐이라 엄마는 밖에서 기다렸고 저와

동생은 언니한테 매달려 극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공연 내

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극장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엄마

가 사주신 풀빵을 먹었던 기억이 제법 선명합니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바람이 스산했던 늦가을, 저는 운명처럼

연극을 처음 만났던 겁니다.

그렇게 무섭기만 하던 엄마 앞에서 이제는 제가 잔소

리를 늘어놓습니다. 이건 이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

세요, 이건 버리시고 저건 좀 챙기세요. 그러면 엄마는

알았다, 알았다 하시며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한 보

따리 안겨주시지요. 딸의 잔소리가 듣기 싫으신 겁니다.

이제야 저희 모녀는 다른 엄마와 딸처럼 제법 친근해 보

입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가 조용히 늙어가는 걸 지켜봅

니다. 자식들의 삶을 설계해주고 이제는 뒷전으로 물러나

조용히 늙어가는 엄마를 말입니다. 그 모든 일을 마음에

새기셨던 성모님처럼 엄마 마음속에도 세 딸의 태어남과

성장과 방황의 기억들이 모두 새겨져 있을 테지요.

엄마…!

김나영

요셉피나

| 극작가

엄마

역대

교황님

말씀

| 바오로 6세교황

캘리그라피

이희연

세실리아 | 홍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