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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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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이삭

지금은 종영된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아십

니까? 저는 그 프로그램의 본방사수 애청자였습니다. 예

능임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놓

칠세라 마치 강의 듣는 학생처럼 열심히 시청했었죠. 제

가 똑똑한 아재들의 ‘지적인 입담’에 그토록 열광했던 이

유는 간단합니다. 자잘하게 얻어들은 이런저런 지식이 작

품을 쓸 때 종종 요긴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상자 속에

잡동사니를 잔뜩 모아놓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버릇이, 작

가가 돼서는 잡동사니 지식을 모아놓는 일로 바뀐 것뿐이

죠. 물론 이렇게 주워 모은 지식은 주재료보다는 양념 역

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직접 만나 인터

뷰하고 장소를 탐방하고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어야 탄생

하니까요.

사실 저는 제가 좀 더 똑똑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보

다 배운 것도 많고,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엄청 읽어대는

데다, 한 번 보고 들은 건 제발 좀 안 까먹는 사람 말입니

다. 그런데 저는 남들만큼만 배웠고, 읽고 싶은 책만 골

라 읽는 데다, 한 번 보고 들은 건 웬만해선 외우지 못하

는 머리를 갖고 있습니다. 나이 드니 증상이 점점 심해져

서 읽은 책도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거나 내용은 좀 기

억나는데 그게 무슨 책이었는지 제목이 도통 생각나지 않

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강의 중에 멋지게 인용했으면 싶

어 말을 꺼내놓고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심지어는

그 짧은 순간 내용마저도 까먹는 바람에 ‘멋지려다 만’ 굴

욕의 순간이 부지기숩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저란 인간을

이다지도 반푼이 작가로 만드셨을까요? 굳이 셀프디스를

하고 또 굳이 셀프변명을 늘어놓자니 좀 부끄럽지만 그래

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것 같아 굳이 안 해도 될 이야

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희

망 칸에 단 한 번 ‘선생님’, 나머지 열한 번 모두를 ‘작가’

라고 채운 우직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강의도

하고 있으니 결국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셈이네요. 사실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것도, 대단한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닌 제가 작가로 살 수 있었던 건 그런 간절함 때문이었

습니다. 이 반푼이 같은 작가는 그래서 누구나 간절히 바

라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대단치 않지만

매우 드문 존재입니다. 그래도 기왕 소원을 이루어주실

바에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 오, 주여! 이제라도 좀 더 지적인 존재로 업그레이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압니다. 각각의 존

재가 반짝거리는 이유 말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이루어내

는 큰 꿈. 그 자리에 제 이름이 있으니까요. 그 자리에 하

느님의 깊은 섭리가 있으니까요.

김나영

요셉피나

| 극작가

반푼이작가

역대

교황님

말씀

| 베네딕도 16세교황

캘리그라피

이희연

세실리아 | 홍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