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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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선조
의
숨결
을 따라
성지순례길-수도권지역
파란 하늘이 드높은 날, 강화대
교를건넙니다. 바다의짭짜름하고
비릿한 냄새가 차창으로 스며드는
군요. 읍내 기슭에 고려궁지가 넓
게 자리하고 있네요. 1232년 고려
가 몽고의 침입에 맞서 개성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 39년간 항
쟁하였던 곳이지요. 그 바로 아래,
인천교구강화성당안에진무영순교성지가있군요.
진무영
(鎭撫營)
은 한양
의 관문인 강화도를 지키
기 위하여 1700년에 설
치한 종2품 군영이었습
니다. 그런데 1866년에
병인박해가일어나베르뇌주교와다블뤼보좌주교를비롯
한 9명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수많은 신자들이 순
교하였지요. 그때리델신부는조선신자 10명과함께배를
타고 중국으로 탈출하였습니다. 훗날 조선교구 제6대 교구
장이된그는조선에남아있는페롱신부와칼레신부를구
출하는한편, 박해받는조선교회를구해줄것을자국에요
청하였던 겁니다. 이에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인 로즈가
강화도에상륙하여고려궁지에있는외규장각의서적과은
괴 등을 약탈한 병인양요가 터졌지요. 그러자 흥선대원군
은강화유수에게진무사및삼도수군통제사를겸하게하여
진무영을정2품군영으로승격시키고기구를강화하였답니
다. 의정부에서는 ‘서양배가 멀고도 먼 바다를 건너와서 제
멋대로침략하는것은틀림없이우리나라에염탐무리들이
있어서 안팎에서 서로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고종실록」 1866년
10월15일)
라며 그 무리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고요. 그러
한 와중인 1868년에 장치선·최인서
(영준)
·박서방·조서방 등
이이곳진무영에서순교하였던겁니다.
장치선은 성 장주기 요셉의 조카로 리델 신부를 중국
으로 탈출시켰습니다. 몇 달 뒤에 병인양요가 터지자, 리
델신부를태우고강화도에정박중이던프랑스군함에승
선하여 박해 상황을 전해주었지요. 한양의 애고개 회장이
었던 최인서
(영준)
역시 리델 신부가 중국으로 탈출할 때 함
께 있었으며,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함에 올랐습니다. 이
로 인하여 두 사람 모두 효수형을 당하였던 겁니다. 아울
러 박순집 베드로의 형인 박서방과 조참봉의 부친인 조서
방도 함께 처형되었고요. 이들의 행적은 「승정원일기」
(1868
년 5월 22일)
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사학죄인 장치선과 최영
준은 양인들과 내통하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가 도적들을
불러들이기도한일의진상을모두자복했다고합니다. …
진무영으로 압송하여 군민들을 크게 모아놓고 효수하여
백성들을경계토록하는것이어떻겠습니까?’
이곳에서 순교한 분들은 조선 교회의 참혹한 상황을 알
려 성직자와 교우들을 구하고, 신앙을 지키고자 하였습니
다. 그들은 백척간두의 살벌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목숨
을 걸고 외국 신부와 함께 중국을 오갔으며, 외국 군함에
승선하였던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천주를 이
땅에 알리고자 한 순수한 열정과 견결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 우리는
어디에목숨을걸고지내는지새삼되짚어봅니다.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교수
진무영순교성지입구
강화성당
진무영순교성지
(인천광역시강화군강화읍북문길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