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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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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이삭

큰아이가 아기 때 크게 아픈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암병동이 따로 있지 않아 어린이병동 안에서 소아암 환자

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그들과 함께 있다 보면 지금 느끼

는 불행과 고통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아이가 퇴원하면 골수기증을 신청해야겠다고 결심

했고 조금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골수은행에 혈액을 보관

해두었습니다.

둘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골수은행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적합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가보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망설임

은 없었습니다. 드디어 생명을 나눌 기회가 생겼다는 기

쁨이 작지 않았고, 솔직히 그동안 지었던 크고 작은 죄들

을 골수기증으로 퉁 쳐보겠다는 계산이 아주 없지는 않았

습니다.

신촌에서 만난 아이 아빠는 아직 적합 검사도 하지 않

았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해대며 병원으로 가는 동

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가끔씩 기증을 결

정해놓고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는 공여자가 있는데 그 경

우 이미 몸 안의 골수를 다 말려놓은 상태로 준비 중인 수

여자에겐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기증 결정을 신중

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당부였습니다. 저

는 가족 동의도 이미 받았고 큰애가 많이 아파봤기 때문

에 절대 변심할 일은 없을 거라며 안심을 드렸지요. 그런

데 문제는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담당자를 만났을 때 일어

나고 말았습니다. 등에 업고 있던 둘째 아이 때문이었습

니다. 출산한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산모는 골수기증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는 걸 그때까지 몰랐던 거죠. 순간

아이 아빠의 얼굴에 드리워지던 실망의 그늘을, 다시 시

작된 기약 없는 기다림의 표정을 저는 오래도록 지우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제 지갑에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 발급받

은 오래된 장기기증 등록증이 들어있습니다. 골수와 장

기는 물론, 사후 시신기증까지 신청해놓았지만 만 40세

가 넘어 이제는 골수기증도 할 수 없고, 뇌사시 장기기증

은 가능하지만, 자연사일 경우는 그조차 쉽지 않다고 들

었습니다. 시신기증이야 유족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보

니 어쩌면 몸뚱이 하나도 세상을 위해 내어놓기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를 어떻게든 퉁 쳐볼 계산

이었는데 역시나 하느님의 계산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

았습니다.

몸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내어주는 것에 비하면 어

쩐지 쉬운 일 같습니다. 마음은,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자꾸만 상처가 되니까요. 한없이 사랑해도 억울하

지 않은 마음은 도대체 언제쯤 갖게 될까요? 그나마 다행

인 건 사랑을 기증하는 일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다는 겁

니다.

김나영

요셉피나

| 작가

하느님의계산법

역대

교황님

말씀

| 프란치스코교황

캘리그라피

이희연

세실리아 | 홍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