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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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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선조

숨결

을 따라

성지순례길-수도권지역

갑곶 순교성지

(인천광역시강화군강화읍해안동로 1366번길 35)

따사로운 햇살 아래 부는 바닷

바람이 아직은 찹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에 갑곶 돈대

가 있고, 그 바로 위에 갑곶 성지가

자리 잡고 있네요. 성지에 올라서

자 강화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

하강이 흐르는군요. 배를 타고 한

강을 따라 마포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

충지지요.

아니나 다를까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인 로즈가 자국의 선교사들을 살해하였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침략하였습니다. 그때 리델 신부와 천주교인 최선일

· 최인서 · 심순녀가 바닷길을 안내하여 박해의 단초가 되었

지요. 또한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인

로저스가 통상을 빌미로 이곳에 침입하였습니다. 그때도 천

주교인들이 연관되어 흥선대원군이 척화비를 세워 서양 오

랑캐와 그에 부합하는 자들을 척결하라고 명령하였지요. 그

래서 미군함에 왕래하였던 천주교인 박상손 · 우윤집 · 최순

복이 갑곶진두에서 참수되었던 겁

니다.

갑곶 성지 가장 높은 곳에 순교

자 삼위비가 서 있습니다. 시신이

나 봉분도 없고, 생애나 후손도 알

려져 있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그

옆의 묘소 하나가 눈길을 끄는군

요. 2001년 순교자 삼위비가 건립

될 때, 절두산 성지에서 이장된 신

앙의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묘입니다. 그의 부친 박바오

로는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 신

부,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빼내 노고산에 매장하였다가 삼성

산으로 이장한 인물이었습니다. 병오박해 때에는 새남터에

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왜고개에 안장하기도 하였

고요. 그는 아들 박순집에게 순교자들의 매장지를 알려주고

1868년에양화진에서순교하였지요.

부친처럼 훈련도감의 군인이었던 박순집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신부들과 신자들의 시신을 새

남터에서 빼내 왜고개로 이장하였답니다. 남종삼 등 서소문

밖에서 치명한 이들의 시신도 몰래 안장하였고요. 박순집의

일가 16명이 병인박해 때 치명하였지만, 그는 박해를 피하

여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하는 한편 순교자들의 행적과 매

장지를 교회 법정에서 증언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증

언록 3권에는 153명의 순교자 행적이 기록되어 현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지요. 이후 그는 제물포로 이주

하여인천교구발전에힘을쏟다 1911년에선종하였답니다.

성지 입구에 ‘개국의 성역 강화’라 새긴 바위가 눈에 띕니

다. 강화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는 마니산 참성단,

그리고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이 있는 명

실상부한 개국의 성역이지요. 그런 곳에 순교와 증거의 성역

이마련되었으니더욱뜻깊네요.

갑곶 성지의 세 순교자나 박순집 증거자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진 소임이 있을 겁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

라는 성지의 현판을

떠올리며소임을되새겨봅니다.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갑곶순교성지입구

박순집베드로묘

염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