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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9일

3

말씀

이삭

2009년개봉한한국영화 「잘알지도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에 대해 다 아는 척 판단하는

이들에게 일침이라도 가하듯,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당신

이 감히 나를 어떻게 알지요?’라며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

았던이영화가오늘문득떠오릅니다.

영화가 떠오른 김에 제가 몇 달 전 겪은 일화로 오늘의

이야기를시작해보겠습니다.

이어폰 챙기는 것을 깜빡 잊고서 급하게 오른 지하철.

하는 수 없이 그날은 음악 대신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기로

하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고 서 있으니,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

야기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세상 이

야기에 귀가 기울여질 때쯤, 제가 서 있는 바로 옆 노약자

석 쪽에서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왜 저

젊은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있어?!” 그 소리에 돌아보니,

정말로 노약자석의 노인분들 사이에 한 젊은 여자분이 아

무렇지도않은표정으로앉아있는게아니겠습니까. 그광

경을 본 사람들도 하나둘씩 “젊은 사람이 참….” “끝까지

안 일어나네.” 하며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 순간 ‘왜 젊은 사람이 저기에 앉아있는 거지. 참 뻔뻔스

럽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할머니옆에앉아계시던한할아버지께서점잖으신목소리

로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저분도 노약자석에 앉아있을

만 하니까 앉아있는 거예요. 찬찬히 자세히 보세요. 저분

눈이안보이잖아요. 시각장애인아닙니까.”

‘응? 시각장애인이라고?’ 놀란 맘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왜 미처 보지 못했던 걸까요. 그녀의 눈에는 초

점이 없었고, 가방에 반쯤 가려져 있던 지팡이도 그제서야

뚜렷이 보였습니다.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말씀. “어떤 사

람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생각하

고그사람입장에서보기시작하면세상에화낼일이없어

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 순간 저는 머리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자세히 그분을 바라

보니 당연한 듯 경솔하게 판단해버린 제가 너무너무 부끄

러웠습니다. 그분에게큰상처가될수도있는잘못된판단

을했다는사실에생각만으로도죄가된것같아너무죄송

했던기억이있습니다.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판단하면서 그에

게돌을던지는사람은너무어리석은존재가아닌지요. 노

약자석에당연히앉아야할시각장애인조차알아보지못하

는 어리석은 제가 감히 누구를 판단하고 가르치며 제 생각

이맞다고주장할수있을까요. 개개인이모두존중받고사

랑받아 마땅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로서 서로를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배려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진실은 우리를 지으신 하느님만이 가장 잘 알고 계시기에,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는 교만함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

장에서 생각하며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주십사그분께청하고싶습니다.

손여은

카타리나

| 배우

캘리그라피

이희연

세실리아 | 홍보국

역대

교황님

말씀

| 교황프란치스코

잘알지도못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