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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이삭

대답을사는삶

임선혜

아녜스

| 성악가

미국 피츠버그에서 말러의 4번 교향곡을 녹음할 때였습

니다. 몇몇이함께녹음본을듣고의견을나누던중지휘자

가 갑자기 양해를 구하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한시간쯤지나그가돌아올때까지모두태연하

게휴식을취할뿐이었습니다.

오전 일정이 없던 다음 날엔가, 마침 숙소 근처의 성당

에 매일 정오 미사가 있다길래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우연

히 거기서 성체를 모시고 나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알고 보니 어제도 그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뜬

것이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의 상임을 맡으며 미사 시간

배려를 약속을 받았다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간혹 있지

만, 묵주기도는물론, 매일미사를드린다고했습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연주여행 중에 낯선 나라와 도

시에서, 가까운성당과일정에맞는주일미사를찾기도보

통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닌데,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대륙

을 수없이 횡단하는 그가 미사를 매일 드린다니!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신앙을 가진 음악가 찾기는

모래밭에서진주를찾는것만큼어렵습니다.

성당에나가는것이몸에배긴했지만얕은믿음에, 의심

도 많은 저는 신기한 사람을 만난 듯 물었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음악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도 결국 비즈니

스가 아닌가. 분명 성공으로 가는 길과 신앙에서 가르치는

바가충돌할때가있을텐데, 그런경우에당신은어떻게하

느냐?” 돌아온그의대답은차분하면서도명료했습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타고난 재능이 있어 음악가가 되

었으니,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최대한 잘 펼쳐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보다 뛰어난 오케스트라들과 작업을 하고 싶

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중에 하늘에 가면 그분은 내게

무엇을 물어보실까? ‘너 베를린 필 지휘해봤어? 밀라노 스

칼라 극장은 몇 번이나 서 봤지? 뉴욕엔 못 갔구나!’ 과연

그러실까? 아닐 거다. 나는 그분이 물어보실 질문에 대한

답을살려고한다.”

눈과 머리가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현실 속의

딜레마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했습니다. 하

지만 그에게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아주 명료한 기준

이있었고, 그것은바로세상마지막날에만나리라확신하

는그분, ‘하느님과의대화’였습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지휘자이지만 어떤

것이그의음악을더특별하게만드는지, 그비밀을알아낸

듯 기뻤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탈

렌트를 그걸 허락한 분의 방식으로 열 배, 스무 배로 불려

내는진정으로멋진음악가의존재가….

자신의 남다른 신앙생활이 종종 비웃음을 산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개의치않았습니다. 이에저도용기를내어봅

니다. ‘물어보실것에대한대답’을살아볼용기를….

다음 날 미사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그와 멀찍이서 나마

아주특별한 ‘평화의인사’를나누었습니다.

나를이끄는

성경구절

오현희

세실리아

불광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