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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관계를저버리지않으면

<라이프오브파이>에서열여섯살인도소년파이는 ‘단

지신을사랑하고싶은마음’에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모두믿습니다. 그러나신에대한그의믿음과사랑은벵골

호랑이와 단둘이서 작은 구명보트로 태평양을 표류하면서

파도처럼 출렁입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저 멀리, 아니

면 아주 가까이, 아니면 내 마음속에 있

는 것인가. 너무나 간절할 때에 신의 침

묵은 무관심인가, 시험인가. 기적은 신이

주시는것인가, 인간이만드는것인가.’

동물들을 가득 싣고 가족과 함께 캐

나다로 가던 화물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한 현실 앞에서

파이는 “난 죽게 될 거야”라고 울부짖습

니다. 구명보트에는 언제 자신을 집어삼

킬지 모를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바다

에는 상어가 어슬렁거리고, 하늘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절망과 공포가 엄

습할 때마다 소년은 신을 원망하고, 신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려 227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면서도 끝까지

믿음과 관계만은 저버리지 않습니다. “의심을 인생철학으

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

슷하다”면서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하고, 내면 성찰로 자

신의존재감과목적의식을만들어갑니다.

호랑이와의 관계와 믿음도 저버리지 않습니다. 혼자가

되면어느쪽도결국살아남지못할것이란 ‘생존방식’을서

로깨달으면서공간을나누고, 시간을공유하고, 조금씩소

통하면서, 서로필요한존재가됩니다. 파이가바다에빠진

호랑이를 구하고, 호랑이는 파이를 위해 수면 위로 뛰어오

르는 물고기를 잡습니다. 아누타섬 사람들의 공존 법칙인

연민, 사랑, 나눔, 협동의 ‘아로파’가 인간과 맹수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기도와 성찰, 환상만으로 파이는 그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한 ‘정말 신의 존재를 믿게 하는’

‘거짓말 같은 일’을 호랑이와 함께 한 셈

이지요. 호랑이야말로 어쩌면 파이가 그

토록 찾던 신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릅니

다. 그것을알았기에멕시코해안에도착

한 후에 호랑이가 조용히 사라지자 파이

가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닐까요. 신

(주님)

이렇게늘가까이에계십니다. 우리가미

처알지못할뿐….

원작인 스페인 출신의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

(국내에서는 ‘파이 이야기’로 출간)

과 마

찬가지로 영화에서도 파이는 자신의 경

험담을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듭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이야

기한 ‘인간과호랑이의기적과도같은표류기’이고, 다른하

나는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으려는인간들의살육전’입니다.

영화는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 하고 우리에게 맡깁니

다. 어차피 영화는 사실이 아닌 허구입니다. 이왕이면 그

안에서 믿음의 힘, 희망과 공존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조금더멋진이야기’를선택하면좋지않을까요.

이대현

요나

|

국민대겸임교수, 영화평론가

영화칼럼

2013년(2018년

4DX

로재개봉)

감독

_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