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ਔ ੈ
말씀
의
이삭
감사로응하는초대
저는 늘 제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칫 교만하게 들릴까 봐 조심스럽습니다만 이 땅의 모든 생
명과 마찬가지로, 저의 매일매일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닿
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기도 중
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넘어, ‘하느님, 갚겠습니다’를 되
뇔 정도로 하느님께 빚진 마음이 큽니다. 그건 다름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양 같은 저를 그동안 몇 번씩
이나예쁜종소리로불러주셨기때문입니다.
처음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부터가 순전히 하느님의 부
르심이었습니다. 당시엔저희집다섯식구중아무도천주
교신자가없었는데도저혼자뚱딴지같이제발로걸어가
성당 문을 두드렸으니까요. 사실 그 때만 해도, 저는 어디
좋은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하얀 미
사포는 마치 새로 받은 폼 나는 교복 같았고, 교리 수업이
끝나고신부님과다같이가진뒤풀이자리는마치 TV에서
보던연예인이랑친해진것처럼신기했습니다.
그러다 한참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되었고, 바쁘다는 핑
계로마치그학교를 ‘졸업’이라도한듯길잃은양이된적
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저
를 불러들이셨습니다. 특단의 조치로 저에게 숙제를 내 주
신 겁니다. 천주교 잡지 <가톨릭 비타꼰>에 글을 연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일로저는마치얼떨결에무대뒤백스테
이지에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맺은 수
많은 형제자매와의 고마운 인연 덕에 벌써 5년이 되도록
나오질않고있지요.
이후에도 하느님은 저에게 여러 번 뜻밖의 초대장을 보
내셨습니다. 한번은, 멀리이탈리아까지가서그것이하느
님의 초대였음을 알고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시시의 성글라라 대성당에서 혼자 눈이 퉁퉁 붓도록 울
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전북 익산의 봉쇄 수
녀원에서 만났던 성녀 글라라가, 당신의 고향 묘소까지 찾
아온 저를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꼭 안아주었거든요. 그
런 제가 어느덧 또 다른 어린양의 품을 만나, 김치찌개 한
그릇 앞에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는 하느님의 가정을 꾸리
게 되었으니, 하느님이 저에게 이제는 어디든 손잡고 같이
오라며든든한짝꿍까지정해주신셈입니다.
그러다가장최근에하느님께서저를호출하신곳은바로
이곳, 제가지금글을쓰고있는서울주보였습니다. 저의부
족한 신앙 고백을 수많은 신자들과 나눌 수 있는 너무나도
벅차고 영광스러운 특급 초대였지요. 물론 이번에도 저를
뻔한 곳으로 부르진 않으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저에게 배
정된 3월이 전면적 미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맞물렸
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며 보니, 덕
분에 그동안 저의 신앙을 더욱 깊이 돌아보며 하느님께 더
욱 바짝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선에서 애쓰시는
의료진과정부관계자분들을비롯해, 우리의평범한일상을
평범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모든 영웅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는기도안에훨씬더많은감사를담겠습니다.
안현모
리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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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세진
에스테르
인천교구중2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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