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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의
이삭
간절함
재가 되는 순간까지 같이 가는 동반자가 있습니까? 저
는 있습니다. 바로 늘 제 옆을 지키는 나무 묵주와 실 매듭
묵주입니다. 아주 오래 함께 살아와서 조금은 닳아있는 이
묵주두개는제살붙이나같습니다. 여러사람에게구슬과
유리, 옥으로 만든 예쁘고 화려한 묵주를 선물 받았지만,
전저와함께영원히재가될수있는이두개의묵주로늘
기도합니다. 영원한친구이며동반자입니다.
며칠 전 어느 지인이 ‘나는 내 마음을 따라 산다’고 했습
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마
음은 때때로 공정한 도덕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런 마음을 따를 수 없는 갈등에서 저를 지켜 주는 힘이 바
로 묵주입니다. 마음을 따르려고 하는 본심의 갈등 속에서
시가태어나기도하지만, 끝까지절바르게살게하고지켜
주는것은묵주입니다. 전공정한관찰자를가슴에지닌이
성적 인간이 못됩니다. 바람의 사촌쯤으로 태어났는지 너
무자주흔들립니다. 저를믿지못하고괴로워할때가많습
니다. 성당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하고, 시집을 열 권 이상
세상에 내어놓고,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하지만 위선이
왜 없겠습니까. 비신자보다 요상하게 자기 진심을 가리며
분별력의 웃음으로 위선을 날리지만, 제 기도가 길어지는
일, 제 침묵이 길어지는 일은 늘 반성 안에서 ‘내 탓이요’를
잘게잘게씹는시간일것입니다. 그러나십자가아래성모
님이 새겨진 묵주를 들고 앉으면 ‘이미 다 아는 사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 없는 거리의 버팀목이라 마음
속이 꽉 차고 하염없이 행복합니다. 그런 동반자이기에 저
는 두려움이 없을까요? 드린 말씀대로 ‘거리 없는 거리의
동반자’가 제 안에 있는데도 본능적인 공포는 멈추지 않습
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저는 새벽 두 시쯤 캄캄한 창
을 내려다보며 허공을 딛고 선 두려움이 솟구칩니다. 묵주
두 개로는 부족한 듯 이 세상 묵주를 모두 어깨에 메고 절
룩이며 남산에라도 올라야 할까요. 아무리 온몸에 묵주를
메도 예수님의 십자가 한 조각도 따르지 못하면서 묵주 찬
양을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닌지 다시 부끄러워집니다. 특히
스스로 삶의 여정이 순탄치 못하다고 ‘왜 저에게?’라고 억
지를 부려 보기도 하지만 누군들 가슴에 폭탄이 없겠습니
까. 고요히소리없는폭탄을성심으로누르느라홀로묵주
를돌리는사람들이바로 ‘우리’입니다.
생각하면 참 많은 행운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것만은 잊
어서는 안 된다고 가슴에 성호를 긋습니다. 어둠도 공포도
주님이 다 아시는 삶의 한 조각이라 생각하고 친해지려고
합니다. 더 낮아지려 합니다. 부족한 저는 단 한마디 ‘간절
함’으로 살려 합니다. ‘간절함’이 제 자산의 전부라고 생각
합니다. 진정한 평화의 성수 한 모금이라도 오늘 다시 제
마른입술을축이려고이른새벽성당갈채비를합니다.
신달자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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