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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인의
삶
글_
서희정
마리아
|
그림_
홍미현
세레나
살아가는모든날
성이시도로
(축일: 5월15일)
이시도로는 해가 뜨고 한참 후에야 농지에 모습을 드러
냈다. 오늘도 새벽 미사를 드리고 온 것이었다. 진즉 일을
시작한 다른 농노들은 일제히 그를 노려보았다. 이시도로
가 해야 할 일까지 모조리 떠맡아서 하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농노들은 주일
도 없이 일하는데 이시도로는 주일 내내 십자가 앞에 무
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아무리 십계명에서 ‘주일을 거
룩히 지내라’고 했지만, 농노 ‘주제’에 그런 것까지 다 지
켜서 어느 세월에 맡겨진 일을 끝낼지 의문이었다. 하루
의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기도하며, 혼자 거룩한 척
하는 것도 꼴사나웠다. 다른 농노들은 주인을 찾아가 이
런 이시도로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주인 역시 그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이시도로는 주인
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저와 다른 농노들에게 같은 크기의 땅을 돌
보게 하십시오. 훗날 수확량을 비교해 보면, 제가 게으름
을 피우지 않았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주인과 다른 농노들도 동의했다.
씨 뿌리는 철이었다. 햇볕이 강해 대지 위에 뿌려지는
씨보다 농노들이 흘린 땀방울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모
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시도로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씨를 뿌리는 동안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하느님! 저는 씨를 뿌리는 사람일
뿐이오니 열매는 오로지 주님께 맡깁니다.”
하루가다르게자라는곡식을보면서는이렇게기도했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이리도 잘 입히고 키우시니, 저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걱
정이 없사옵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농사를 짓는 것만큼 하느님의 현존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직업도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시도
로는 일할 때마다 늘 감사했고 기뻤다. 사실, 그에게 살아
가는 모든 날이 감사였고 기쁨이었다.
추수철이 다가왔다. 모든 농노가 주인 앞에 수확량을
내놓았다. 주인은 깜짝 놀랐다. 이시도로의 수확량이 다
른 농노들에 비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일하는 시간이 우리보다 적지 않았던가! 필시,
천사가 거들어 준 게 분명해!”
저마다 의문을 제기했지만, 답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주인도, 다른 농노들도, 더는 그의 작업 행
태를 나무라지 못했다.
*덧: 주인은 성 이시도로에게 마리아 토리비아라는 여
인을 아내로 삼도록 도왔다. 두 사람은 평생 농사를 지으
며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