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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선조

숨결

을 따라

성지순례길-수도권지역

수원화성성지

(경기도수원시팔달구정조로 842)

봄이 오는 길목에서 고풍스러운 성벽에 오릅니다. 긴 겨

울을 이겨낸 개나리와 목련 가지에 맺힌 노랗고 하얀 꽃봉

오리가 화성

(華城)

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네요. 봄나들이 나

온 상춘객들의 표정도 화사하고요. 화성은 정조가 뒤주에

갇혀 아사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1789년에 양주 배

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세웠습니다. 효심으로 지은

성곽이었던 겁니다. 정약용이 설계하고 큰 돌을 옮기는 거

중기를 만들어 1796년에 완성하였지요. 나중에 이곳은 개

성·강화·광주와 더불어 유수부로 승격되어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행정 기관이 되었습니다.

유수부가 된 화성은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자 인근의 신자

들을 심문하고 처형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기록에 전해오는

83위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모진 수난을 당하다 참혹하

게 죽어갔거든요. 특히 하느님의 종 이벽과 동료 132위 중

원 프란치스코를 포함한 17위가 이곳에서 치명하였지요. 성

벽을 따라 걷는 곳곳에 순교의 흔적이 남아있네요.

화성에는 동쪽의 창룡문, 서쪽의 화서문, 남쪽의 팔달문,

북쪽의 장안문이 있습니다. 남북으로 이어져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장안문과 팔달문 밖의 장터는 천주교인들을 공개적

으로 때려죽이던 장소였습니다. 반면 동서로 이어지는 창룡

문과 화서문은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였지요. 그래서 화서문

은 성안에서 처형된 죄인의 시신을 내보내 시구문이라 불렸

습니다.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다는 화홍문은 홍수를 대비하여 수

원천 위에 세운 수문입니다. 그 곁의 언덕에 우뚝 선 동북각

루, 일명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른다는 뜻

을 지닌 정자지요. 이에 걸맞게 정자 아래 물가에는 버드나

무의 연둣빛 가지가 하

늘거리네요.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높이 지은

이 아름다운 정자 역시

천주교 신자들을 참수

하던 곳이었다니 섬뜩하기만 합니다.

바로 옆 성벽에 조그맣고 비밀스럽게 만든 북암문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동북각루에서 처형한 천주교 신자의 시신은

성벽 밖으로 던지고, 목은 북암문에 걸어놓았다는 겁니다.

동남각루와 동장대에서 처형한 사학죄인의 목을 각각 남암

문과 동암문에 매달아 놓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목조건물인

동북포루 역시 천주교인을 참수한 뒤에 몸은 성 밖으로 던

지고, 목은 성벽에

매달아 놓았던 곳이

랍니다. 성 안팎에

서 행해진 이러한 끔

찍한 조치들은 나라

에서 금하는 천주교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지 만인에게 보이

기 위함이었지요.

뒤주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선친을 위하여 효성으로 지

은 화성에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천주의

자녀가 되어 대부모를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지요.

꽃처럼 아름다운 성곽에 붉은 피로써 순교의 꽃을 피웠던

겁니다. 봄바람 부는 성벽에 서서 오늘 우리는 가슴 속에 어

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자문해봅니다.

김문태

힐라리오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북암문

방화수류정

염화강

장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