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Page  3 / 13 Next Page
Information
Show Menu
Previous Page 3 / 13 Next Page
Page Background

֕ ਔ ੈ

말씀

이삭

김해선

비비안나

|

시인

나의친구비비안나

그날은 몹시 비가 내렸습니다. 저는 한 봉사 단체에서

회원들에게 간행물을 발송하는 작업에 자원봉사자로 참여

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봉사자는 저 혼자였

습니다. 일이 많지 않았기에 한 시간 30분쯤 작업을 하고

난 후 담당 수녀님께서는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니까 따

뜻한차한잔하자고하시며밖으로절이끄셨습니다.

우리는 근처 찻집에서 오붓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게되었습니다. 수녀님께서편하게대해주셔서인지저는

저의 힘든 마음을 꺼냈던 것 같습니다. “수녀님 저는 초등

학교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요, 생각보

다일찍결혼해서아무것도못하고있어요.”

남편에게도 부모 형제에게도 못 했던 말을 수녀님께 두

서없이 꺼내놓았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잠시만요.” 하시고

는 밖으로 나가셨고, 곧이어 푸른색 표지에 가지고 다니기

좋은 노트 한 권을 사 오시더니 첫 장에 ‘나의 친구 비비안

나,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글을 쓰기 바라요’라는 글을 써

주셨습니다.

자신감 없고 부끄러워하던 저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신

수녀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성체를 모셨던 순간처럼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푸른색

표지로 된 노트에 조심스럽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을 건너뛰고 노트를 펼칠 때는 수녀

님께서 말씀하시던 순간이 생각나서 다시 한 줄을 쓰고 이

어서쓰게되었습니다.

유치원 다니던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큰아

이가학년이올라가자거실에큰상을펴놓고아이들과함

께 공부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지만, 제가 원

하는 공부를 위해서 대학원에 들어간다는 것이 쉬운 결정

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책을

보고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가 저를 위한 시간으로 움직여

주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

하고도 한참을 등단하지 못한 저는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

졌고 반복되는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깊은 절망 속

에서도 수녀님께서 제게 적어주셨던 ‘친구’라는 말이 따뜻

하게 저를 일으켜 세우곤 했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이나 신

자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계실 수녀님, 언제 어디서나 당신

의소명을다하실거라고믿고있습니다. 감히수녀님을친

구라고 부르며 제가 흔들릴 때마다 노트를 펼쳐봅니다. 노

트안에서수녀님은그때그모습으로밝게웃고계십니다.

복음

묵상

캘리그라피

_

이수미

율리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