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대하던 것처럼 권세가 당당한 지배자의 모습이 아
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
을 취하셨습니다.”
(필립 2,7)
이런 점은 예수님이 작은 마
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던 사실에서 분명
하게 드러납니다. 요셉은 황제가 명한 호적등록을 위해
만삭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합
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방을 구
할 수가 없게 되자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들을 낳아
구유에 눕힙니다
(루카 2,1-7)
.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 세상의 구원자이신 분이 어린 아기의 모
습으로 오셔서 초라하고 누추한 곳에 몸을 누이신 것입
니다.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낮은 곳에서 고생하며 무거
운 짐을 진 이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빛을 주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낮은 곳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일어나 걸어가야 합
니다. 동방박사가 ‘별빛의 인도를 받아’ 자신의 고향을
뒤로하고 길을 떠났듯이
(마태 2,1-12)
, 베들레헴의 목자들
이 ‘천사의 지시를 따라서’ 자신의 일터를 떠나 마구간
을 찾아갔듯이
(루카 2,8-18)
, 우리도 일어나 그분께로 향
해 가야 합니다. 자신의 자리에 머물고자 하면 그분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 소유, 내 신념, 내 지식, 내 경험,
내편을고집하면, 구세주를만날 수없습니다. 나자신
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이웃과 하느님께로
향해 걸어가야만 참 빛
(요한 1,9)
이신 구세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참된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동방박사
들이 누렸던 큰 기쁨과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선포하였
던평화를맛볼수있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처럼 되어서 자
기 기준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려는 욕심’
(창세 3,5)
때문
에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자신
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하는 욕심, 세상의 중심인 절
대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조정하고 싶은 욕망
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한
욕심과 욕망으로 인해서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럽고 힘들
어집니다. 성경이 경고하듯이 그릇된 욕망의 종착점은
결국 죽음뿐입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야고 1,15)
하느님은 잘못된
욕망에 빠져 죄와 죽음의 굴레에 갇혀있는 인간을 구하
시려고 당신 아들을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
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끝까지 하느
님께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구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종의 모습이지만, 사랑과 자비를
가득히 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갈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르면 자신이
받은 힘과 희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
두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
기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도록 합시다. 그러면 세상
에 가득 찬 고통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기쁨과 평화
가들어서기시작할것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은총에 의탁하고,
그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면서 우리 모
두하느님을향한길을꿋꿋하게걷도록합시다.
천주교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서리
염수정안드레아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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