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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인간은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인간생명을옹호하는것과생명에대한존중과사랑을보이는것은하느님께서모든사람들에게맡기신임무입니다. 하느님께서

는세상전체에대한당신의주권에참여하도록당신의살아있는형상인인간을부르십니다.그러므로살아있는인간은교회가따

라걸어야하는일차적이고근본적인길입니다.

(생명의복음2항,42항)

글_

생명위원회

생명운동

다블뤼 주교님의 연혁만 본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

겠습니다. 어떻게 교구장이 되자마자 순교하신 것인가 하

고…. 그런데조금더주교님에대해서검색해보면이런구

절을찾는것도어렵지않습니다. “그는이때부터 1866년 3

월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신부로서 12년, 주교로서 9년)

조선의

선교사로 활약, 당시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

사가되었으며동시에조선의언어와풍습에도가장능통하

였다.” 따라서 주교님은 신부로 12년, 주교로서 9년은 조선

교구 부주교로, 오히려 교구장 주교로서 살으셨던 날은 며

칠이되지않았구나하는것을알게됩니다. 그런다블뤼주

교님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천주교회사와 조선 순교사의

편찬’이라고 합니다. 자료를 찾고 목격 증인을 찾아 증언을

수집하고 이것들을 프랑스어로 옮기고, 그 외의 주요 순교

자들의 전기를 파리 본부로 보낸 분도 바로 다블뤼 주교님

입니다. 예를들어신약성서를만들면서복음사가들이어떻

게예수님의생애를엮었을까생각해보면어쩌면다블뤼주

교님의 방식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거의 150년

이 지나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볼 때에, 그 당시에 그런 중요

한 일을 누군가가 힘들게 해놓지 않았다면, 박해도 없이 너

무편하게신앙생활을하면서전해내려오는전설이야기처

럼순교자들에대해서뜬구름을잡았을지도모를일입니다.

주교님에대한또다른글을찾다보면이런구절이나옵니

다. “서울의금부에갇힌다블뤼주교는심한고문에도굴하지

않고오히려천주교에대한훌륭한호교론을펴기도했다. 그

러나 3월 23일그가사형에처해질것이결정되어충청도보

(保寧)

수영

(水營)

으로이송되었다. 그들은죄수복을입고고문

으로상한다리를질질끌면서이송되는도중,처형예정날짜

인 3월 30일성금요일에서처형일이다소연기될기미가있

음을알고 ‘성금요일에죽게해달라’고간곡히부탁하였다.”

순간 올해 2018년도 비슷한 시기에 성삼일이 겹친다는 것을

기억하고전례력을찾아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2018년3월

30일도 주님 수난 성금요일입니다.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십

자가에매달린그날, 다블뤼주교님도예수님처럼피를흘려

처형되셨고군문효수되었던것입니다. 앞으로성금요일이되

면,전심을다해주님의사제로살다가순교한다블뤼주교님

을기억할것입니다. 내가꼭해야할일, 나만할수있는중

요한일을제때에정확하게해야할때도주교님을꼭기억하

겠습니다.고맙습니다.우리주교님.

역대

교구장

올한해동안서울대교구역대교구장에대해아주작은퍼즐이라도함께찾아보고, 그분들의마음을공감하는시간을가졌으면좋

겠습니다. 아무리좋은것이라도직접찾아보고, 생각하고, 공감하지않으면나와상관없기때문입니다. 오늘의서울대교구가있기까

지헌신하신교구장들의삶이주는울림을전합니다.우리가찾은서울대교구다섯번째교구장님은성다블뤼주교입니다.

이도행

토마스신부

· 1841년12월18일서품.

· 1845년10월조선입국.

· 1857년 3월 25일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성

성식을 가졌고, 1866년 3월 7일 교구장직

을승계하였으나곧체포되어 3월 30일충

청도보령의갈매못에서순교함.

· 1968년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교황요한바오로2세에의해시성됨.

사진한국교회사연구소제공

05

5대교구장

(프랑스) 1866년3월7일~30일

성다블뤼

(Daveluy,안돈이)

주교